바라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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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5.3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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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숙소에서 출발하였다. 새벽 4시에 기상하여 비몽사몽 한다. 인도에서 어디를 가든 하루에 열두 시간 버스 타는 일은 보통이다. 어느 스님은 한군데 사진을 찍기 위해 이틀 동안 차만 타다 보니 한 달 걸렸다는 말이 실감 났다. 

버스에 오르자 잠은 도망가 버렸다. 차창 가로 고개를 돌렸다. 인도에서 아침 안개는 자욱하기로 유명하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간간이 커다란 나무가 능선을 이루어 산수화 그림을 펼쳐 놓은 듯하다. 나무꼭대기와 땅 사이 중간 부분에는 안개가 드리워 마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영화필름 같다. 눈을 깜빡거리며 현실이 맞는지 허벅지를 꼬집어 보았으나 아프다.

산수화를 바라보면 바위와 나무 사이에는 구름을 그렸으니 그 자체가 몽환적인 꿈을 꾸게 한다. 산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 구름이 등장하여 무거우면 비를 내리게 한다. 세상에 집착하지 않는 바람의 힘으로 구름은 흘러간다. 계곡물이 강으로 흘러드는 것은 넓은 세계로 찾아감이다. 윙윙 차바퀴 굴러가는 소리에 제정신 들게 하였다. 해가 뜨기 전 여명이 밝아 오자 물체는 선명하게 보이며 나무들과 안개가 이어졌다. 

차창에서 멀리만 바라보다가 가까이에 시선을 돌렸다. 농사짓는 밭들이 끝이 없다. 넓은 공간의 밭에 하얀 터번을 머리에 두른 인도 남자 백여 명이 둘러서 있다. 흰옷까지 입고 있어 공동체 의식이 남아 있는 다비장인 줄 알고 유심히 살폈다. 새벽시장처럼 인파 끝에는 소가 많이 보였다. 도축하려고 사가는 우시장도 아닐 터인데 무엇일까. 채식하는 나라여서 소는 농사만 짓게 하는 동물인데 서로 사 가려는 경매시장 같아 보였다. 

누런빛에 등이 매끈하게 살 오른 소는 우유를 잘 짜고 밭갈이하고 등짐만 잘 나르면 최고다. 서로 일 잘하는 튼실한 소를 사려고 경매 중이다. 인도인은 수천 년 전부터 소를 숭배하여 도심지 거리에도 소 떼와 자동차와 자전거가 행렬을 이루고 있다. 흙은 사람에게 농사를 짓게 한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식량 공급에 차질이 생겨 대난리가 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식량창고와 곡창지대를 선점하는 나라가 승리한다 했다. 인도인은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후 어느새 순박한 농사꾼으로 변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생각하니 세상 전체가 명상센터이다. 거리에서 지나치는 사람과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사물 전체가 나에겐 스승이었다. 사물은 그 자리에 있지만, 우리만 변했다.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눈으로 더 많은 것을 새기고 왔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앞으로는 적게 말하고 많이 행동하는 바라봄의 자세로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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