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사랑의 길 ‘김만덕 정신’…고두심 “세계로 뻗어나가길”
고향 사랑의 길 ‘김만덕 정신’…고두심 “세계로 뻗어나가길”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3.05.30 1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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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주&제주인] 1. 배우 고두심
‘김만덕국제상’ 통한 세계화 위해 31일 제주포럼서 기조발표
“대전환 시대 모두 본받아야…불평등·불균형 없는 세상 기대”

제주인의 DNA는 특별하다. 육지와 고립된 섬이자 변방이라는 약점을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극복하면서 그 삶의 궤적을 DNA에 새겼다. 그리고 DNA에서 발현된 제주인 특유의 정신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근본(根本)’이다. 공생을 위한 수눌음, 약점을 강점으로 뒤집는 지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등은 제주인의 결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지금 대전환의 시대에 제주인의 정신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미래 제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무한 동력’인 제주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본지는 올해에도 제주인 발굴 프로젝트 ‘2023 제주&제주인’을 시작한다. [편집자주]

배우 고두심씨가 30일 제주시내 한 식당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임창덕 기자
배우 고두심씨가 30일 제주시내 한 식당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임창덕 기자

“230여년 전 그 때 우리 조상이 김만덕 할머니가 나눠 준 밥을 못 먹었다면, 그 죽을 먹지 못했다면 저는 태어날 수 없었어요. 김만덕 할머니의 정신을 모든 사람들이 본받으면 불평등, 불균형과 같은 단어는 모두 사라진 세상이 오는 거죠. 그 분이 태어난 곳에서 태어났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배우’이자 ‘대배우’, 그리고 ‘국민 엄마’까지 모두 배우 고두심씨(72)를 향한 찬사이자 그가 이뤄낸 업적이다. 그리고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타이틀은 또 있다. 바로 ‘제주인’이다.

고씨는 31일 고향 제주에서 ‘무대’에 선다. 국민들을 웃고 울게 한 드라마나 영화 속 배우가 아닌 ‘제18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의 기조발표자로서 전 세계를 향해 ‘김만덕국제상’을 통한 국제적 협력과 연대를 피력할 예정이다.

# 제주인의 정신, 김만덕

의인 김만덕은 제주인의 정신 그 자체다.

1739년(영조 15년) 제주에서 태어난 김만덕은 유통업으로 부를 축적한 ‘거상’이었다.

하나하나의 이익은 적게 보는 대신 많이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박리다매’(薄利多賣), 눈앞의 이익을 보려 하지 않고 적정한 가격으로 사고파는 ‘정가매매’(定價賣買), 돈이 아닌 믿음을 바탕으로 거래하는 ‘신용본위’(信用本位)를 원칙으로 부를 쌓은 김만덕은 제주에 흉년이 들자 아낌없이 자신의 재산을 도민들에게 나눴다.

‘저축했던 육백 곡을 내놓아 진휼하여 온 고을의 백성 열흘의 목숨을 연장시켰다’(이희발의 ‘만덕전’ 중) 등 그의 나눔은 다양한 기록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원칙과 절약으로 쌓은 재산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나누며 사회적 책임을 다한 김만덕의 나눔 정신은 제주인의 DNA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를 전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알리고 후대에 계승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제주의 후손 중 한 사람이 바로 배우 고두심이다.

# “전국화 넘어 세계화”

30일 제주시내 한 식당에서 만난 고씨는 김만덕의 정신을 알리는데 앞장서게 된 이유를 묻자 제주 출신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고(故) 한상수 선생과의 인연을 먼저 풀어놓았다.

그는 “한상수 선생님은 김만덕 할머니에 대해 자세히 알고 계셨고, 그의 정신을 지키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자수로 돈을 벌면 후배들을 모아 밥을 사주면서 김만덕 할머니 이야기를 해줬다”며 “선생님께 김만덕 할머니 얘기를 자주 들어도 바쁘게 일을 하다보면 잊곤 했다. 그렇게 만나 뵙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 어느 날 문득 ‘내 조상님들이 김만덕 할머니가 내어준 밥과 죽을 먹지 못했다면 나는 태어나지도 못했겠구나’라고 깨달았고, 그렇게 자랑스러운 김만덕 할머니의 정신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에 동참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회상했다.

고씨는 데뷔 30주년을 맞은 2003년 10월 고향 제주도를 한 바퀴 걸었다. 내 고향 제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답을 찾는 여정이었다.

고씨는 “당시 서울에서 정형외과 병원을 운영하던 양원찬 박사님에게 ‘제주가 왜 사랑스러운지 느껴보고 싶어서 한 바퀴 걸어야겠다’고 했다. 그러자 양 박사님이 지인들과 함께 십시일반 도와주셨다”며 “그리고 김만덕 할머니의 정신을 알리는 일은 여성만 나설 게 아니라 제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일이라고 피력했다. 그렇게 양 박사님과 함께 본격적으로 김만덕 정신을 알리는 활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고씨와 양 박사의 노력은 바로 성과로 이어졌다. 제주에서 ‘김만덕 나눔쌀 천석 쌓기’에 성공한 이들은 곧바로 서울에서도 ‘만석 쌓기’를 이뤄냈고, 베트남에 만덕중학교와 제주초등학교도 설립했다.

그렇게 고씨는 ㈔김만덕기념사업회의 대표이사를 거쳐 지금은 양 박사가 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김만덕재단의 이사로서 김만덕의 나눔 정신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

배우 고두심씨가 30일 제주시내 한 식당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임창덕 기자
배우 고두심씨가 30일 제주시내 한 식당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임창덕 기자

고씨의 다음 목표는 ‘김만덕국제상’ 제정이다. 김만덕 정신의 전국화를 넘어 세계화를 위해 기존의 ‘제주특별자치도 김만덕상’을 국제적인 상으로 격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씨는 “김만덕 할머니는 사람이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돈을 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준 의인”이라며 “그의 정신을 모든 사람들이 본받는다면 불평등과 불균형이 없는 세상, 폭력과 빈곤이 없는 세상이 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UN총회에서 채택된 지속가능발전목표의 첫 번째는 모든 형태의 빈곤 종식이고, 두 번째는 굶주림의 종결이다. 대전환 시대의 빈곤 퇴치는 인류의 당면 과제”라며 “이런 측면에서 김만덕 정신의 세계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힘주어 얘기했다.

고씨는 지속적인 기부와 캠페인 참여, 장학금 조성 등 김만덕의 나눔 정신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모두가 김만덕의 정신을 본받으며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그는 이미 그의 이상향 속 김만덕이다. “김만덕 할머니가 태어난 곳에서 태어났다는 게 자랑스럽고 감사하다”며 웃는 그의 얼굴에 의인 김만덕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이유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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