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 속에서
오래된 시간 속에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5.23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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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수필가

오래된 낡은 것이 좋다. 그게 무엇이든 역사의 시련을 거쳐서 살아남았다는 강함이 좋다. 나의 낡은 손목시계만 해도 그렇다. 20년 전에 산 것이라 요즘엔 거의 착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동안 수없이 많은 여러 모양의 시계를 물리치고 남아있다. 동글납작한 평범한 모양의 것이다. 생각해보니 모양이 아니라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 것 같다. 그 시계를 언제나 책상 위에 둔다. 

많은 사람들이 노인의 행복은 돈과 건강이라 생각한다. 그럴까? 어떤 사람은 친구라고 한다.

노후에도 눈부신 미래가 있기는 있다. 미래의 희망이라기보다는 지난날의 추억을 그 자리에 놓아 보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긍정적으로 볼 때, 그래서 마음도 평온한 상태라면 성공인가. 그립다는 감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좋은 추억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립다’는 감정은 노후에 얻는 선물이다.

노후에는 오래된 것이 어울린다. 때로는 골동품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정복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나이 든 얼굴을 보며 ‘이게 정말 나인가?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헤밍웨이도 마찬가지였다.

헤밍웨이도 늙고 나이 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내 책상 위에 낡은 시계와 함께 놓여있는 책이 있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있거라’이다.

읽고 또 읽었던 책.

무기여 잘 있거라의 명대사는 여고 시절 문학소녀였던 나를 흔들었다. 

“나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랑에 빠졌고 그녀는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사랑이 피어나 죽음으로 끝나는 슬픈 사랑이야기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문학의 백미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인생이라는 전쟁터에서 사랑만큼 빛나는 전리품은 없다고 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29년에 집필한 소설이다.

문학소녀 시절 읽고 또 읽고 밑줄 치던 부분은 사랑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다시 집어 들고 읽었을 땐 달랐다.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실존의 시작이다.”는 부분에 나는 밑줄을 긋고 있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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