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추경’ 엎어놓고 또 ‘민생’ 앞세우기
‘민생 추경’ 엎어놓고 또 ‘민생’ 앞세우기
  • 고경호·김동건 기자
  • 승인 2023.05.2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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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의회, “민생 예산 시급”…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자초
상임위 줄줄이 해외 출장…당장 원포인트 임시회 불투명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도의회가 협치 실종 및 원칙 파기로 ‘민생 추경’ 파행 사태를 야기하자마자 또 다시 민생을 앞세워 한 발 늦은 협의에 나서면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을 자초하고 있다.

무엇보다 민생을 볼모로 당장 지원이 시급한 도민들을 상대로 희망고문하고 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앞서 지난 19일 제주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위원장 양경호, 이하 예결위)는 제416회 임시회 제4차 회의를 열고 ‘2023년도 제1회 제주도 추가경정예산안’과 ‘2023년도 제1회 제주도 기금운용계획 변경안’을 ‘심사 보류’해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제주도는 22일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올해 제1회 추경이 심사 보류된 것에 대해 도민 고통과 생계 부담을 하루라도 빨리 덜어드리지 못하게 돼 도민께 매우 송구스럽다”며 “추경안을 조속히 다시 심사 받을 수 제주도의회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브리핑 직후 양경호 위원장 역시 본지와의 통화에서 “하루라도 빨리 민생 현장에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원포인트’ 임시회 등 제주도가 요청하면 긍정적으로 협의에 나설 것”이라며 “다만 그 전에 제주도 각 실·국과 제주도의회 상임위원회가 주요 사업 예산에 대해 합의를 이루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는 지난 임시회 과정에서 추경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다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제주도의회는 양 기관 간 갈등의 불씨가 된 ‘조건부 동의’를 없애기 위해 ‘증액 없는 삭감’ 원칙을 내세웠지만 추경 심사 과정에서 제주도와 증액을 논의하다 불발되자 결국 ‘보류’ 카드를 꺼내들었다.

추경 파행 여파는 고스란히 도민들이 떠안게 됐다.

당장 지역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의 영업난을 해소하기 위한 탐나는전 5~10% 현장 할인은 추경 파행에 따른 예산 미확보로 23일 0시부터 잠정 중단됐다.

뿐만 아니라 6월부터 시행 예정이던 도내 대학생 대상 ‘천원의 아침밥’도 불투명해졌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및 관광사업체를 위한 대출 이차 보전과 언 피해 작물 지원, 읍면지역 중·고교 통학비 지원, 저소득 장애인·조손 가정 전기요금 지원 등도 덩달아 발이 묶였다.

민생을 위해 추경에 나선 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민생 예산을 놓고 갈등을 벌이다 추경 파행을 합작해 놓고 며칠 만에 다시 민생을 위해 협의에 나서겠다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당장의 원포인트 임시회는 기대하기 어렵다.

양경호 위원장의 발언대로라면 원포인트 임시회 전에 제주도의회 상임위원회와 제주도 실·국이 주요 사업 예산에 대해 합의해야하지만 당사자인 의원들이 ‘해외 출장’으로 줄줄이 자리를 비운다.

실제 농수축경제위원회는 이미 지난 19일부터 24일까지 5박 6일 일정으로 몽골 출장에 나섰으며, 문화관광체육위원회도 20일부터 25일까지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 중이다. 이어 보건복지안전위원회와 교육위원회는 오는 29일 각각 호주와 일본으로 출국해 다음달 4일과 3일 돌아온다.

이미 ‘추경 갈등’은 예고됐고, 실제 파행에 이르렀음에도 각 상임위원회가 예정대로 해외 출장길에 오르면서 원포인트 임시회 전 제주도 실·국과의 예산 합의는 불투명하다.

설사 원포인트 임시회를 이달 중 강행한다 하더라도 예결위 의원 15명 중 절반 이상인 8명이 소속 상임위원회의 해외 출장에 동행하는 만큼 추경안에 대한 재심사에 제대로 임할 수 없다.

양 기관이 민생을 위해 조속히 협의에 나서겠다고 입을 모으지만 사실상 달을 넘겨서야 원포인트 임시회가 열릴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불통으로 야기한 추경 파행 피해를 고스란히 도민들에게 전가해놓고 희망고문까지 얹고 있다.

고경호·김동건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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