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만든 아주 큰 연자방아 같이 생긴 오롬
신이 만든 아주 큰 연자방아 같이 생긴 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5.1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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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교래리 방애오롬
푸른 목초밭 위에 누운듯 보이는 것은 방애오롬의 외륜부이다.
푸른 목초밭 위에 누운듯 보이는 것은 방애오롬의 외륜부이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방애오롬이라는 특이한 오롬이 있는데 교래리 산45번지에 있다. 해발 453.4m, 비고 48m이니 405m 고지에 솟아 있다. 방애오롬 가는 길은 번영로상 대흘교차로에서 우회전해 거꾸리오롬을 지나고 대천이오롬과 교래 사거리 중간에 위치해 있다.

봄이 오는 들녘에 푸르고 넓은 오차드그래스 목초밭 너머 방애오롬은 길게 누워있다. 또한 서귀포 동흥동 산1번지에도 방애오롬 삼형제가 있다. 교래리 방애오롬은 “저게 무슨 오롬이랴” 싶다. 번영로와 비자림로 사이에 있는 이 길은 시멘트로 포장된 산길이다. 그 길 중간쯤에 삼거리가 있고 좌로 보면 연립주택으로 나가는 길이 있다.

연립주택 마지막 집에서 좌회전하면 자동차 한 대가 다닐만한 삼나무 숲길이 보인다. 그 삼나무 숲길을 지나면 푸른 목초밭이다. 100m쯤 걷는 길은 우측으로만 삼나무 숲이 계속되고 좌측은 목초밭 뚝길이다. 그 길이 끝날쯤 우측에 비로소 큰방애오롬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큰방애오롬 표지판 너머로도 좌우에 늘어선 삼나무 숲길이다. 조금 더 가면 야자 매트도 깔렸고 얼마쯤 가서 좌측에 솔숲이 보이면 동북으로 방향을 돌려 걷는다. 삼나무는 독성이 많아서 잎이 진 자리에는 고작 천남성 독풀과 관중 고사리 정도이나 소나무는 자연 친화적이라 그늘진 삼나무 숲과 달리 오후 햇살이 반짝이고 잡초밭에는 제주산 나무들이 눈에 띈다.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면 담팔수·산딸나무·윤노리나무·종낭(때죽나무)은 보이지만 그 외 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 오롬의 생태계가 퍽 단조롭다는 말이다. 고사리도 산나물도 보이지 않고 정상인가 싶은데 동서남북이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동쪽 삼나무 사이로 나갔더니 높지 않은 절개지 너머로 푸른 목초밭이 보인다. “야! 저기가 분화구인가보다” 궁둥이로 슬슬 끌어 바닥에 발을 디디자 드넓게 펼쳐진 분화구가 펼쳐진다. “와!”하고 소리친다. 사방으로 길게 누웠다가 일어서는 듯한 봉우리들이 분화구를 둘러쳤다. 자세히 보니 동북쪽으로는 다소 낮은 외륜으로 인해 민오롬이 뒷배경처럼 보인다. 희한한 것은 푸른 목초밭 중간에 알오롬 하나가 있고 이제 막 피어나는 가막살나무 꽃이 하얗다.

방애오롬 굼부리 안에도 녹초밭이다. 왼쪽의 누런 부분 가운데 작은 알오롬과 하얗게 보이는 가막살나무 꽃이 피었다.
방애오롬 굼부리 안에도 녹초밭이다. 왼쪽의 누런 부분 가운데 작은 알오롬과 하얗게 보이는 가막살나무 꽃이 피었다.

방애오롬 입구에서 알오롬까지 목초밭 뚝을 지난다. 알오롬 서쪽 편 목초밭도 끊겨 소로인가 했더니 깊이 1.2m, 폭 2.5m 정도의 도랑이다. 도랑 좌우에는 고비가 실하게 솟아났다. 오는 길에 다시 보니 오롬 동서쪽에도 도랑이 파여 있다. 물 빠질 곳도 없고 화산토가 물을 흡수해 버리고 그래서 습지 될 만한 곳인데도 물이 없는 궁창이다.

굼부리를 돌아보니 김녕 삿갓오롬과 너무 닮았다. 다른 것은 삿갓오롬은 외륜이 좁은데 이곳은 꽤 넓다. 삿갓오롬 등성이는 차가 다니는데 여기는 높낮이 차가 크고 4곳의 봉우리는 높다. 또한 삿갓오롬 가운데는 절구가 파였고 옛날에는 논밭으로 쓰였다. 그러나 이 오롬은 절구 혹이 솟아 있다. 삿갓오롬은 해변에 있으나 이곳은 높은 고산지대다.

이 오롬은 언뜻 보기에는 원형분화구로 보이나 자세히 보면 먼저 화산이 폭발하고, 원형굼부리(분화구)와 동시에 외륜이 형성된 뒤에 다시 원형굼부리 안에서 두 번째로 분화할 때 알오롬이 솟았으니 교래리 방애오롬은 이중 분화한 복합형 오롬이다.

방아에는 상하로 찍는 절구형과 회전식으로 돌리는 멧돌형이 있다. 절구 중에 디딜방아는 한두 명이 돌리나 멧돌은 한두 명이 돌리는 소형과 대형의 연자방아도 있는데 둥근 수평의 원반 돌 위에 수직의 구르는 돌을 짐승이나 사람이 돌리는데 제주도에는 대부분 연자방아다.

물이 많은 곳에는 물레방아를 많이 이용한다. 가정집에서는 돌방아·나무방아·집안에서는 쇠방아(절구)도 있다. 40년 전만 해도 한국산촌에서는 사용했었고 만주와 운남성·태국북부 치앙마이·메홍손이나 미얀마 샨주 등의 소수민족 산동네에는 아직도 디딜방아가 많이 쓰인다. 그러나 교래리 방애오롬은 멧돌이 아니라 신이 만든 아주 큰 연자방아 같다.

방애오롬 굼부리는 동서남북 400~500m 가량으로 보인다. 이만한 규모는 하논 분화구와 비교할만하다. ‘오롬 나그네’ 저자 김종철씨는 30여 년 전 탐방 때는 잔디밭이었다는데 철조망과 목초밭이라니…. 머지않아 이 오롬도 출입이 제한되지 않을지 잡찹하다. 종다리 소리도 들리지 않는 봄이 봄일까? 봄바람에 푸른 목초 나부끼는데 한라산 봉우리는 오늘도 파랗고 점잖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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