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코스프레는 이제 그만
서민 코스프레는 이제 그만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5.1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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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동화 작가

잘난 사람이 잘난 척하지 않고 부자가 부자인 척하지 않고 겸손하고 서민적인 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미덕이다. 하지만 잠깐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겸손한 척 서민인 척한다면 그건 위선이다.

정치인들은 서민 코스프레를 꽤나 좋아한다. 지나간 시절을 복기하자면 우리는 정직하지 못 한 자들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서민행세 하며 이미지 정치하는 걸 많이 봐왔다.

선거 앞두고 볼썽사납게 낡은 구두를 신었던 시장도 있었고 첫 출근하던 날 너덜너덜한 가방을 들거나 비싼 차를 놔두고 일부러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청빈한 척하던 고위공직자들도 있었다. 역시 형편없이 헌 구두를 신고 유세장에 나타난 여성 정치인도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서민과는 거리가 멀었다.

진짜 서민들은 행여 빈곤한 티가 날까 싼 신발을 신을지언정 구멍 난 신발은 안 신는다. 그래도 그들이 검소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만약에 대한민국이 부자가 서민보다 더 많은 사회라면 그런 일이 벌어질까? 내 생각엔 왠지 명품으로 도배하고 나서 그들과 같은 부류라는 걸 표방하고 다닐 것 같다. 부자들에게 낡은 신발이 신선해 보일지 의문이 들어서 말이다.

왜 이들은 서민인 척 쇼를 하는 걸까? 당연히 표를 얻겠다는 목적이겠지만 서민이 그만큼 절대다수라는 반증이며 개천에서도 용이 나오기를 바라는 심리를 이용한 일종의 마케팅일 터다. 말하자면 동질성을 드러내서 환심을 사겠다는 뜻이다. 자신을 개천에서 나와 마침내 용이 될 입지전적인 인물로 포장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왜 서민들은 그들에게 잘 속는 걸까? 개천에서 난 용은 적어도 붕어, 가재들의 삶을 이해할 것이라는 착각과 어쩌면 자신들의 편에 서줄 영웅이 되어줄 거라는 기대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와 비슷한 처지라면 팔이 안으로 굽어 응원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 아니겠나. 

에둘러서 ‘도와주십시오’가 아니라 해맑은 얼굴로 ‘한 푼 줍쇼’하면서 최고의 후원금을 얻어낸 젊은 정치인의 정체를 보니 놀랍고 무섭다. 그 역시 구멍 난 운동화 신고 서민 코스프레를 진하게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수십억 또는 그 이상의 자산을 가진 엄청나게 가난(?)한 사람이었다.

진짜 가난한 사람은 알부자인 그를 위해 지갑을 열었고 그는 국민의 대표로 국회에 앉아 꿩 먹고 알 먹으며 서민을 상대로 가난을 팔았다. 세비 타 먹고 후원금 받아먹고 코인으로 큰돈 벌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나?

가상화폐로 거액을 남긴 이면에는 손해를 본 서민이 존재할 뿐 구멍 난 운동화가 단기간에 수십억 자산으로 변신하는 마법 따위는 없다. 그의 지갑에 담긴 코인은 서민의 피눈물인 셈이니 서민은 봉이요, 국민은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속임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까다 보니 뭔가 자꾸 나오는 모양이다. 그대의 이름도 양파인가? 법과 양심을 얼마나 속였는지도 두고 볼 일이다.

앞으로도 서민의 환심을 사려고 쇼를 하는 정치인은 또 나타날 것이다. 아마도 낡은 신발은 너무 식상해서 또 다른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서민 코스프레는 역겹다. 그만 봤으면 좋겠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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