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 같은 천혜 자연지형…김 양식 최적의 환경
방파제 같은 천혜 자연지형…김 양식 최적의 환경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5.1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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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식으로 부자 섬이 된 시산도(詩山島)
살푸섬에서 내려다본 시산도 시산항과 마을.
살푸섬에서 내려다본 시산도 시산항과 마을.

# 16개의 올망졸망한 섬들로 이뤄진 시산도

날씨가 우중충하더니 밤새 비가 내렸던 모양이다. 어제는 다리로 연결된 섬들을 다녀 날씨 걱정을 안했지만 오늘은 배 타고 갈 섬이라 걱정하며 어스름한 새벽에 길을 나섰다. 6시가 지났는데도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컴컴하다. 골목길을 몇 번 돌아 소록대교에 들어서자 멀리 섬들이 아련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새벽이라 차가 별로 없어 거금대교를 달리는 기분이 어느 때 보다 상쾌하다. 고흥군 최남단에 있는 시산도(詩山島)를 가기 위해 거금도 오천포항에서 배를 타야 한다. 예전에는 고흥 녹동항에서 시산도로 가는 배가 다녔었는데 거금대교가 개설되면서 시산도와 가까운 오천항에서 하루 3번 왕복하고 있다.

시산도는 거금도 남쪽 4㎞지점에 위치해 16개의 올망졸망한 섬들로 이뤄졌고 본섬의 넓이는 3.65㎢로 하늘에서 내려다본 섬 모습은 움푹움푹 마치 파도를 막는 방파제와 같은 천혜의 자연지형이 아마도 김 양식장으로 최적의 환경을 만든 것 같다. 미역 채취 때라 그런지 오천항 주변은 미역을 싣고 드나드는 배들로 복잡하다. 크고 작은 무인도 주변 미역양식장에서 작업하는 배들이 그림 같다. 작업하는 배들을 촬영하고 있는데 멀리 시산도 쪽에서 차도선이 다가 온다.

시산항으로 들어서면 바위에 소나무 두 그루가 손님을 맞이 한다.
시산항으로 들어서면 바위에 소나무 두 그루가 손님을 맞이 한다.

시산도에서 들어온 시산 페리는 손님이 내리자 이내 출발한다. 오천항을 출발한 시산 페리호는 헉헉거리는 소리를 내며 달리고 있다. 항구를 떠나 조금 달리자 시산도가 바로 눈앞이다. 섬 사이를 돌아 30분에 시산항에 도착했다. 솔섬과 살푸섬 두 개의 무인도를 이용해 거대한 방파제를 만든 시산항. 살푸섬 커다란 바위에 소나무 두 그루가 눈길을 끈다. 넓은 항구에 내려서자 꽉 들어찬 김 양식 장비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다. ‘이 섬이 김 양식으로 부자 된 섬’이란 것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배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서자 정면에 ‘詩山 어서오십시오’거대한 표석이 나그네를 맞이한다.

표지석 아래 마을 유래가 새겨져 있다. 서기 1784년 제주도에서 온 양선도란 사람이 처음 이 섬에 들어와 정착하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기록돼 있다. 이 섬도 제주도 사람이 처음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항구 앞에 있는 솔섬에서 바라보면 마을 지형이 마치 활모양으로 생겼으며 간조때 보면 화살 모양의 돌무지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 듯 보여 활 시(矢)자를 써 시산도(矢山島) 또는 시산(示山·詩山)등 여러 이름으로 불렀고, 일제때 시산(矢山)으로 굳어졌다가 1995년 군의회의 의결을 거쳐 경치가 아름답고 문사들이 많이 배출되는 ‘문원지방’이란 뜻으로 ‘시산도(詩山島)로 개명됐다고 적고 있다.

주변 해역에서 양식 장비를 싣고 오는 배.
주변 해역에서 양식 장비를 싣고 오는 배.

# 섬 곳곳에 김 양식 장비·각종 어구들 쌓여있어

넓은 물양장에는 마을의 용지공원이 조성돼 노인회관이며 마을회관, 보건지소가 모여있어 그런지 마을 노인들이 군데군데 앉자 나그네들을 바라보고 있다. “어디서 온 손님이요”, “저는 제주도에서 왔습니다”, “먼데서 왔소”, “그런데 이 섬에 제주도에서 온 사람이 처음 살았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예.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잘 모르겠소만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지요. 낚시오신 것은 아닌 것 같고 구경 오셨소”, “섬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시산 팔경(詩山 八景)을 천천히 돌아보면 좋것소” 저쪽 큰길 따라가며 천천히 구경하고 가란다.

동해일출(東海日出), 공산낙조(功山落照), 원포귀범(遠浦歸帆), 송도모설(松島暮雪), 대동청하(大洞晴霞), 죽전야우(竹田夜雨), 석불모종(石佛暮鐘), 운교추월(雲橋秋月)이 시산 팔경이라는데 섬을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찾아다니기가 어려울 것 같다. 또 1시간 후 배가 출항하기 때문에 섬 구석구석 돌아보기 어려울 것 같아 우선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가다 길목에 녹동초등학교 시산분교를 만났다. 섬에 있는 학교치고는 꽤 큰 편이다. 10개 교실로 예전에는 학생수가 많았지만 지금은 젊은이들이 섬을 떠나 4명만 남았단다.

섬 가는 곳마다 김 양식 장비와 각종 어구들이 쌓여있다. 너무 멀리 갔다가 배 시간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아 돌아 살푸섬 쪽을 향했다. 꽉 들어찬 김 양식 장비 틈을 어렵게 빠져 방파제에 올라서니 시산항과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산도는 한때 최고 214가구 1400명이 살면서 바다에서 생산되는 김과 미역파래. 바다 고기를 육지에 나가 식량과 바꾸며 어렵게 살았다. 1970년도부터 인근 바다가 김 양식에 최고 적지일 뿐 아니라 섬 주변 해역 물흐름이 좋아서 생산되는 김은 빛깔 광택이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최고 상품으로 평가되면서 본격적인 김 양식에 전 주민이 발 벗고 나섰다. 현재 김 양식 가구는 가구당 약 300~500여 책을 시설해 64억원 수익을 올려 가구당 평균 1억5000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김 양식부자 섬’이 됐다.

일 년 내내 김 양식 장비를 정리하느라 섬 주민 손길을 쉬는 날이 없다. 인력이 부족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어디서 왔느냐 묻자 네팔에서 왔단다. “네팔은 바다가 없는데 바다에서 일하는 게 어렵지 않으냐”, “처음에는 바다를 보고 겁났었는데 지금은 바다가 좋다”며 환히 웃는다. 크고 작은 배들이 양식 장비를 가득 싣고 쉴새 없이 바다를 달리고 있다.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양식장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양식장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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