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재봉틀
어머니의 재봉틀
  • 강민성 기자
  • 승인 2023.05.1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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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만 화백·김신자 시인의 시와 그림으로 보는 제주어
(60) 어머니의 재봉틀

■ 표준어
어머니의 재봉틀

깊은 밤 뒤척이다 마주한 재봉틀이
안방에 뚜껑 열고 어머니 손 기다리듯
감춰진 북집 사이로 삶의 더께 지우네

녹이 슨 손잡이에 기름칠해 줬더니
드르륵 박음질로 그리운 말 전해오네
“마 이거, 느 ᄀᆞ졍가라 쓰당보민 ᄒᆞᆫ놈역ᄒᆞᆫ다”

박음질할 때마다 생각나는 어머니
어쩌다 우리 매듭 뜯어지면 좋겠네
단절된 박음질 안팎 저 세계와 이 세상

■ 시작 메모
우리 집엔 100년은 족히 넘는 손재봉틀이 있다. 팔십이 거즘 돼가는 큰언니가 물질을 해서 일금 삼천원을 주고 산 일제산이다. 그 귀한 물건이 어떻게 나에게로 왔는지, 생각은 현실에만 머물고 소유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던 어머니가 막내인 나에게 물려 주셨다. 아이를 키우면서 재봉틀은 정말 요긴하게 썼다. 오일장에서 천을 사다가 아이들 기저귀를 만들고 바지를 줄이고 아이 옷을 만드는 등 제대로 배운 기술자답게 잘 만들지는 못했지만 제법 입을만 했다. 한 번도 재봉틀을 배운 적 없었지만, 비 오는 날 어머니 옆에 앉아서 바늘귀에 실을 꿰어 주는 조수 역할을 하다 보니 눈짐작으로 배우게 되었다. 어머니는 재봉틀을 정말 귀하게 여겼다. 벽장에 신줏단지 모시듯 뚜껑 덮고 놓여있던 재봉틀은 절대 만지면 안 되는 귀한 물건이었다. 어머니는 밭에도 못 가고, 물에도 못 가는 비 오는 날에만 재봉틀을 꺼냈다. 빗소리와 함께 너덜너덜한 삶의 조각들을 드르륵드르륵 박음질했다. 마음 놓고 좋아할 수도 없었던 비, 오늘은 그때의 슬픈 비가 내린다. 그 슬픔이라도 저 마음대로 주룩주룩 내렸으면 좋겠다. 그때의 어머니가 되어 내 삶들을 박음질한다. 어머니는 내게 몸이든 마음이든 남편이든 밥이든 내게 온 모든 것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아끼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재봉틀에는 마음, 재봉틀에는 사람이 있으라고 한 것이다.

■ 제주어 풀이
(1) 암팜 : 깊은 밤
(2) 몸질ᄒᆞ다 :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
(3) 대멘ᄒᆞ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다
(4) ᄀᆞᆯ테 : 좀처럼 닦아지지 않게 붙어 눌은 때
(5) ᄒᆞᆫ놈역 : 한 사람의 하루 동안 할 수 있는 일의 양
(6) ᄆᆞ작지다 : 실이나 줄에 이리저리 얽혀 매듭이 맺어지다
(7) 튿어지다 : 뜯어지다

강민성 기자  kangm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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