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절망 사이
희망과 절망 사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5.0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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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울 고문헌 박사·논설위원

언제부턴가 자꾸 이런 말을 되뇌인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태양이 떠오르듯 매일 아침 희망이 싹터오던 시절이 있었다. 현실은 팍팍하고 고단했지만, 그래도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을 수 있었다.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갖고 오늘의 고통을 참을 수 있었다. 이 구비만 돌면, 이 언덕만 넘으면, 이 강만 건너면, 평탄한 길이 펼쳐질 거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 현실은 아직이었지만, 남들이 ‘희망의 나라로’ 가자고 노래 부를 때 같이 따라부를 수 있었다.

이제 희망은 ‘희망고문’이 되어버렸다. 전혀 이질적인 두 낱말이 하나가 되어버렸다.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 고문이 되어버린 현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현재를 배반해버리는 현실, 내일에 대해 기대를 품는 것이 오히려 고통이 되어버린 현실, 기성 세대들은 이해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새가 떠나버린 둥지는 어떻게 될 것인가. 희망이 사라져버린 현실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연일 들려오는 가슴아픈 소식은 우리의 무뎌진 감각을 소스라치게 만든다.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꽃들이 무참히 떨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를 위해 평생 열심히 살아온 인생들이 외로운 최후를 맞이하고 있다. 가난과 고독과 절망이 우리의 이웃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내가 어릴 때는 “국가는 부유하나 국민은 가난하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국가가 부유해지면 국민도 잘 살게 되는 것 아닌가. 이것이 당연한 명제가 아닌가. 어떻게 국가와 국민이 괴리될 수 있단 말인가. 국민들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국가가 부유해졌는데, 그 국민들이 어떻게 가난해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가 될 거 같다. 국가와 국민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국가를 구성하는 단위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통치권력을 선출하지만 그 권력은 모든 국민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들 사이 상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평균소득은 높아졌지만, 그 높아진 평균이 우리 모두의 배를 부르게 해주진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아래로 쏠린 국민들은 가난과 고독에 시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나만이 부유할 수 있는가. 나만이 행복할 수 있는가. 너가 있어 내가 있고, 그래서 우리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 중 누군가가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행복할지 몰라도 우리는 불행하다. 매일 누군가가 자기의 생명을 포기해야 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가 아무리 부유한들 우리는 불행하다. 우리는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만 부유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괴물이 되어버린 희망, 고문이 되어버린 희망. 우리는 어떻게 희망을 살릴 것인가.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것인가. 개인이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사회 속에서는 희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본의 확장 욕망을 극대화하고, 개인들의 사회적 연대를 불온시하는 사회에서는 희망은 자라기 어려울 것이다. 그냥 희망을 갖자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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