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단상
나 홀로 단상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5.0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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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자 수필가

인터넷은 탯줄처럼 현대인의 삶에 단단히 접속된 듯하다.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손가락 하나로 세간의 일들을 보고 듣는다. 솔깃한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진다. 뉴스는 물론 영상, 영화를 시간 관계없이 들여다볼 수 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마구 뒤섞여 있다. 세상 돌아가는 형국이 이렇다. 어쩌다 매트릭스를 벗어나 자신의 비범함을 과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가상 세계에 휘둘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오프라인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외국어를 배운다고 비싼 수강료를 얼마나 받쳤던가. 그런 시간과 투자가 하나의 추억거리가 되었을 뿐 뚜렷한 성과도 없었다. 추억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함께했던 아날로그 시간을 떠올린다. 달아나버린 순간들이 아득한 움직임으로 가물거린다.

많은 일이 인간관계로 이루어진다. 사람 사는 이치가 그러한가 보다. 서로 화합하기도 하고 서로 부딪치기도 하면서 편을 가른다. 원인과 결과를 생산해 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은 집단을 벗어나면 소외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능력도 안 되는 일에 매달리다가 결국 제풀에 지쳐 나뒹군다. 그렇게 세상은 돌아간다. 우스운 꼴 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는가. 인간은 모두 고유하거늘, 의미 없는 경쟁으로 싸움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혼자서 오래 견디지 못하는 존재인가 보다. 스스로 살아낼 의지가 없는 사람의 경우, 처음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해방감을 맛보다가 점차 무료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결국 집단을 이탈한 개미처럼 어디로 가는지 어디까지 가야 할지 방향을 잃고 만다. 살아가는 동안 겪는 일은 희비의 갈림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의미 있는 일을 가진다면 무엇을 더 바랄까. 

사람들은 교류를 통해서 공감대를 형성해 간다. 작게는 소모임에서 크게는 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취미의 집단을 만든다. 공감으로 뭉쳐질 때 관계는 더욱더 돈독해지는 법이다.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의사 교환 방식은 공감이 아닌가 싶다. 일방적인 질주의 끝은 결국 외로움과 고립일 것이다. 사람들은 ‘함께’라는 집단성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딘가에 가입을 통해 존재를 드러내려 하는 모양이다.

인터넷을 넘나들며 공동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뭉치며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다. 가상 세계의 팽창 속도가 빛의 속도처럼 빠르게 느껴진다. 어딘가에 접속을 하려 해도 계정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 인터넷계정으로 묶어진 세상을 살고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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