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밭·선반내·자구리·당캐에 담긴 이야기
사장밭·선반내·자구리·당캐에 담긴 이야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4.3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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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택 ㈔질토래비 이사장

제주 도처에는 화살을 날리던 곳인 사장밭이 여럿 있다.

천지연 주차장은 오래전 한쪽은 논밭이고 한쪽은 사장(射場)밭이었다. 이곳 가까이에 있는 솔동산에 위치했던 서귀진성은 왜구 방어를 위해 쌓은 9진 중 규모가 가장 작았다. 이런 사정으로 병정들은 진성 밖에 있는 사장밭에서도 훈련에 임했을 것이다.

진성 위 솔동산도 소나무가 우거지기 전에는 병사들이 화살을 날리던 (화)살 동산이었다. 그런 연유로 솔동산 입구에는 화살을 상징하는 커다란 아치형 모형이 세워져 있다. 

서귀포시 걸매공원과 제주시 무근성 근처에는 선반내라는 지명도 있다. 이곳은 선반 또는 솜반과 같은 지형과는 관계가 없어 보인다. 반면 선반내 근처에는 제주시에는 무근성과 병문천이, 서귀포에는 서귀진성과 홍로천이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으로 미뤄본다면 성 밖을 흐르는 내의 뜻을 지닌 ‘성밖내’가 수백년 동안 음이 변천하며 ‘선반내’로 불리어온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서귀진성은 처음 1439년 목사 한승순이 홍로천 위에 쌓았으나 임진왜란(1592) 전후 왜적을 잘 관찰할 수 있는 현재의 장소로 이옥 목사 시절 옮겨 다시 쌓았다 한다. 

바닷가에서 용출되는 산물과 아름다운 바다 풍경 등을 상품으로 하여 서귀포에서는 매년 자구리 축제가 열린다. 그럼 자구리에는 무슨 뜻이 담겨 있을까.

오래전 물이 솟는 이곳엔 도축 시설이 있었다. 그런 연유로 ‘소 잡으러 가자’란 뜻의 ‘잡으러’가 와전돼 ‘자구리’로 불리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6·25전쟁을 전후해 서귀포로 밀려온 피난민들 중 일부는 이곳 해안가에서 살기도 했을 것이다. 그 중 경기도에서 온 이들은 이곳 바닷가에서 유영하는 자리돔이나 작은 물고기들을 ‘자구리’라고 부르기도 했을 게다. 

경기도에선 자리돔 비슷한 물고기인 밴댕이를 자구리라고 부른다. 자구리라는 어휘는 이후 알게 모르게 주민들에게 퍼져 나가 지금의 ‘자구리 해안’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제주에는 당캐(포)로 불리는 지역도 몇 있다. 할망당이 있는 포구라는 뜻으로 불리어지는 당캐(堂浦)는 표선리와 추자도에도 있다.

반면 안덕면 대평포구의 옛 이름은 당나라와 교역을 했다는 의미를 담은 ‘唐浦’로 전래되고 있다. 탐라순력도(1702)와 대동여지도(1861)에도 唐浦로 표시되어 있다.

또한 이곳 주변에는 중국과 원나라와 통상하던 교역선이 다녔음을 추정케 하는 유적도 있다. 고인돌들이 있고 화순리 선사유적지에서는 교역한 옥 제품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당·송에 이어 원·명 시대를 거치며 제주에서 자란 상당한 말들이 唐浦를 통해 해외로 실리어 갔을 것이다.

조공마들이 다녔던 길이 공마로이다.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서 회자되어온 공마로는 지금 올레꾼들로 오가는 자그마한 돌빌레 몰(ᄆᆞᆯ)질인 마로이다(제주시에는 고마로도 있다). 특히 당포로 이어지는 월라봉에는 또 다른 공마로 길로 여겨지는 담장 길도 수림에 가려져 있다. 

唐浦를 통해 공마를 보낸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록 못지않게 선인들의 기억에서 기억으로 전해지는 구전 역시 소중한 우리의 역사이고 문화일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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