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이 그리 필요하랴
무슨 말이 그리 필요하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4.3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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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가급적 하지 말아야지…”

어떤 공식적인 모임은 물론 지인들과의 술자리에 참석할 때도, 나는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간다. 그러나 그게 잘 되질 않아 속상하다.

쏜 화살과 흘러간 시간, 그리고 입 밖에 낸 말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데. 왜 나는 좀 더 말조심을 하지 못하는 것인가. 한마디는 해겠다는 유혹에 빠져 쓸데없이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놓고 난 후 후회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늙어갈수록 “입은 닫고 지갑만 열라”는데, 왜 이리 입을 열게 되는지.

신언(愼言)의 중요성을 좀 더 일찍 깨달아 수언(修言)을 제대로 했더라면 나의 인간관계나 사는 모습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누굴 탓하랴.

▲흔히 나이를 먹으면 말이 많아진다고 한다.

일단 말이 많은 것은 뭔가에 관심이 많고 자기표현을 많이 한다는 것이니 나쁜 현상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기 말만하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나면 도대체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 모른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왜 나이가 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되풀이할까. 무슨 토크쇼를 하는 일타 강사도 아닌데도 오래전에 겪은 경험에 대해 지루하게 말을 계속 이어간다.

나도 마찬가지다. 가끔 주위로부터 옛날엔 술 먹으면 더 말이 없어지더니, 이젠 말을 장황하게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정력이 모두 입으로 올라갔느냐는 말도 들으면서.

요즘 가급적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든지 짧게 끝내려고하는 이유다.

▲주말에 레프 톨스토이의 명상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이상원 옮김)을 다시 펴들었는 데 “혀끝까지 나온 나쁜 말을 내뱉지 않고 삼키는 것,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음료”라는 구절을 발견했다.

왜 오래 전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이 뜻 깊은 구절이 내 눈에 띄지 않았을까.

치열하게 살았던 톨스토이의 삶과 이 책이 그가 죽기 2년 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글이라는 데 생각에 미치면서 마음의 정곡을 찌르는 느낌이다.

‘입을 다물고 생각하라’는 소제목이 붙은 구절은 더욱 그렇다.

“장전된 총을 조심해서 다뤄야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말을 조심해야한다는 사실은 자주 잊어버린다. 말이 많은 사람일 수록 행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은 행동보다 말이 앞설까봐 경계하고 말하기전에 오래도록 침묵한다. 말하고 싶을 때마다 입을 다물고 생각하라. 그 말이 정녕 할 가치가 있는 말인가를…”

▲세상 욕구불만이 큰 탓인가.

나라나 지역사회 지도자들도 말이 너무 많다보니 세상 조용할 날이 없어졌다.

모두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만, 정말 말 품격을 잃어버리면 곤란하다. 깊히 생각하고 말을 정제했으면 한다. 성공한 지도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모두 과묵(寡默)했다.

‘대념체경’(알아차림을 확립하는 경)을 주석한 묘원스님은 ‘말’에 대해 이렇게 썼다. “말 많았다고 후회하지 마십시오. 말이 많은 것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생긴 습관입니다. 말이 많았을 때는 단지 말을 많이 한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들뜬 마음이 고요해지면 차츰 말이 조절됩니다”

그렇다. 무슨 말이 그리 필요하랴.

수묵화의 여백처럼.

말은 비워놓을 때 말에 힘이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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