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과 담장, 다리 등 마을 전체가 ‘보라 물결’ 이루는 예술의 섬
지붕과 담장, 다리 등 마을 전체가 ‘보라 물결’ 이루는 예술의 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4.27 1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양화가 김환기 고향, 퍼플섬 안좌도(安佐島)
반월도와 박지도를 건느는 안좌도의 대표 보랏빛 목조다리 퍼플교.
반월도와 박지도를 건느는 안좌도의 대표 보랏빛 목조다리 퍼플교.

# 안창도-기좌도가 간척공사로 하나가 된 안좌도

신안군 14개 읍·면의 중앙에 위치한 섬 안좌도는 63개섬(유인도 6개·무인도 57개)으로 구성된 제법 큰 섬이다. 목포로부터 22.9㎞ 떨어진 안좌도는 예전에는 두 섬이던 것을 간척공사로 안창도와 기좌도가 하나의 섬이 돼 안창도의 ‘안’과 기좌도의 ‘좌’를 붙여 안좌도라 부르고 있지만 우리나라 지도에는 기좌도로 표기돼 있어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었다.

면적은 59.88㎢, 해안선 길이 91.4㎞, 인구는 1489가구에 2422명(2013년 기준)이고 논농사와 밭농사가 주를 이루지만 간척지가 많아 염전과 김 양식 등으로 주민소득이 높은 편이다. 자은도와 암태도, 팔금도를 거쳐 찾아온 안좌도. 비바람이 몰아쳐 천천히 둘러볼 여유가 없을 것 같아 차라리 장산도 갔다 돌아오면서 취재할 계획으로 자라도를 거쳐 장산도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바쁘게 자라도 선착장에 갔으나 텅 비어있다. 어렵게 주민을 만나 알아보니 풍랑주의보로 배가 다니지 않고 있단다.

두 개의 섬을 간척해 이뤄진 안좌도에는 여러곳에 농지가 만들어 졌다
두 개의 섬을 간척해 이뤄진 안좌도에는 여러곳에 농지가 만들어 졌다

비가 조금 그치자 안좌도로 돌아와 찾아간 곳이 김환기 생가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 생가는 목조기와 20평 규모의 1동과 앞면 4칸짜리 건물로 방에는 생전 활동하던 모습과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 집은 1920년경 백두산에 자라는 홍송으로 지은 북방식 기억자 형이다. 김환기 화백은 1934년 일본에서 대학 다닐 때 추상미술 운동에 참여했고, 1936년 귀국해 고향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다 1946년 서울로 올라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지냈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는 김 화백이 생전에 추구한 작품 명제로 유명하다. 생가 주변은 아담하게 정리돼 예술의 거리가 조성되고 있다.

해안도로를 걷기 시작하자 다시 눈비가 쏟아져 집 처마 밑에 앉아 더 갈까 말까 한참 망설이다 ‘이왕 나왔으니’하고 다시 걷다 보니 방월리 지석묘 안내판이 서 있다. 섬에 고인돌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 오래다는 이야기인데, 억새밭을 헤쳐보니 여러 개의 고인돌이 놓여있다. 이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유물로 바둑판형의 남방식으로 원래 7기가 있어 ‘칠성바위’라 불렀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4기가 남아있다. 무덤 발굴 때 돌칼, 민무늬 토기, 돌 화살촉 등이 출토됐고 안좌도에는 6곳에 55기의 지석묘가 있다고 한다.

미쳐야 미친다. ‘미친 사람들만 살아 남는다’는 말이 있다. 피카소는 그림에 미쳤고, 아이아코카는 자동차에 미쳤기에 세계 최고의 경영자가 될 수 있듯 어떤 일에 충분히 미쳐있을 때 운명은 당신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지금 당신은 무엇에 미쳐있습니까. 미쳐있기나 한 것입니까?” 정신없이 걸으면서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는 걸까. 섬에 미친것일까? 정말 섬에 미치기나 한 것일까. 혼자 중얼거리고 씁쓰레한 웃음을 웃어본다. 그래 섬이 좋아 섬을 걸으며 말년의 인생을 시험해 보는 것인지도 모르지.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 생가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 생가

# 전설만 남아있던 노두에 만들어진 목조다리 퍼플교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안개와 비가 날려 카메라를 꺼낼 생각도 못하겠다. 메인으로 쓸 한 장은 있어야 하는데. 날씨 때문에 드론도 띄울 수 없고 높은 산에 올라봐야 시야가 막히니 답답하다.

해안을 돌다 보니 두리 마을 입구다. 퍼플교 입구라는 안내판이 여러 곳에 걸려있다. ‘퍼플교가 뭐지’ 갈까 말까 망설이다 마을을 바라보니 온통 마을 지붕들이 보라색으로 칠해있다.

아무리 안좌도가 예술의 섬이라 하지만 그래도 지붕과 담장을 보라색으로 칠을 해놔 무슨 일인가 궁금해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올 때 본 마을뿐 아니라 주변 마을 지붕은 물론 벽면, 담장 온통 보라색 옷을 입은 모습이다. 궁금증이 더했고, 해안가로 접어들자 큰 주차장과 사람들이 추위를 피해 옹기종기 모여있다. 종교가 아니라 관광지다.

안내판을 보고 언덕에 올라서 멀리 보이는 섬으로 가는 다리조차 온통 보라색이다. 퍼플교(Purpte lstand·紫色島) 두리마을 앞바다에 오른쪽 반월도와 왼쪽 박지도를 연결하는 나무로 만든 인도교를 퍼플교라 부르고 있다. 박지도와 반월도 사이에 썰물 때 드러나는 징검다리 ‘노두’가 있었는데 지금은 전설만 남아있다. 두 섬에 암자가 있었 그 암자에 살고 있던 남녀스님이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바다에 돌을 부어 징검다리를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징검다리가 완성해 한가운데서 만났지만 밀물이 차오르고 둘은 영영 사라졌다는 전설이 흐르고 있다. 2008년 나무다리가 놓였고 2016년에는 전남의 ‘가고싶은 섬’ 사업에 선정돼 보랏빛 ‘퍼플섬’으로 꾸며져 퍼플교라 부르고 있다.

퍼플교 구간은 편도 1.46㎞로 두 섬의 산책길까지 하면 9.6㎞로 3시간정도 소요된단다. 퍼플교를 보며 몇 년 전 미얀마 만달레이 갔을 때 우베인브리지가 떠오른다. 허름한 나무다리인데 세계각처에서 관광객이 몰려오는 모습을 보곤 “우리나라에도 저 같은 이야기가 있는 오래된 다리가 있었으면” 했었는데 오늘 퍼플교를 보며, 섬 지역에 있는 다리들이 언젠가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날씨 때문이란 핑계를 대며 섬을 건너보지 않고 돌아섰다. 크게 볼 것이 없다는 안좌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다. 다음 섬을 가기 위해서는 푹 쉬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소주 한 잔 마시며 다녔던 기억을 메모하고 있다.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방월리에 있는 지석묘 표식판.
방월리에 있는 지석묘 표식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