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기본인 종지처럼 제주오롬 기본을 보여주는 곳
밥상 기본인 종지처럼 제주오롬 기본을 보여주는 곳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4.27 1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1. 종재기오롬
보랏빛 무꽃이 피어나는 봄날 종재기 오롬.
보랏빛 무꽃이 피어나는 봄날 종재기오롬.

고사리비가 그친 덕천의 하늘이 언제 그랬냐 싶게 활짝 열렸다. 덕천마을은 구좌읍에서 제일 작은 마을 중 하나이다. 이웃의 조천읍 선흘분교는 본교에서 분교로 격하됐다가 다시 본교로 승격했는데 덕천마을에는 하나 있던 분교마저 폐교되고 김녕초등학교로 통합되고 말았다. 이렇게 산골 작은 마을인 덕천리에 작은 오롬 하나가 있으니 종재기오롬이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거문오롬은 덕천리(구좌)와 선흘리(조천)간 경계에 있지만, 선흘리에 입구가 있어서 마을이 커지며 선흘분교는 100명 넘게 재학하며 수십 년 만에 본교로 승격됐다. 그러나 덕천에 조그만 종재기오롬은 조금도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구좌읍 덕천리 1307번지에 소재한 종재기오롬은 선흘(조천읍)-덕천(구좌읍)-송당 간을 이어주는 1136번 도로상에 있다. 도로상에 접한 종재기오롬은 덕천연수원이 들어서며 주위에는 종려나무와 정원수들이 심겨지며 제주 고유의 가시나무(상록도토리) 등은 빛을 잃었다.

18세기 중엽 ‘제주3읍도총지도’에서 보면 덕천리는 ‘검을흘’로 표기됐다. 제주목 좌면(구좌·조천)에 5흘이 있는데 조천읍의 대흘·와흘·선흘과 구좌읍의 남흘·검흘이다. 남흘은 김녕리 남흘동이 되었고, 검흘은 덕천리로 바뀌었다. 덕천은 ‘설덕에 물이 흔하다’라는 말이다. ‘덕천(德泉)’의 덕은 ‘설덕’의 ‘덕’으로 ‘잡목숲과 화산 돌들이 엉킨 곳(곶자왈)’이라는 제주어이다.

‘덕천(德泉)’은 단지 ‘설덕’이라는 제주어의 한자 표기일 뿐인데 이를 한자로 ‘덕이 있는 물’이라고 유식하게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무식의 소치다. 그런 덕천에 5개의 오롬이 있는데 그야말로 이 오롬들마다 설덕 속에 솟아 있다 할 만큼 덕천은 설덕(곶자왈)이 많다. 종재기오롬도 그런 설덕 속에 솟아 있으며 그 외에 오롬이라 부르지 못할 오롬 새끼들도 많다.

새롭게 들어서는 펜션들이 오롬을 감싸는듯하다
새롭게 들어서는 펜션들이 오롬을 감싸는듯하다

필자는 산나물 캐는 것을 즐겨한다. 그래서 산나물의 이름과 산나물이 많이 나는 곳, 산나물 말리기, 산나물 요리 등에도 관심이 많다. 만주에서 20년간 살며 백두산에 산나물이나 더덕 등을 캐려고 해마다 다녔는데 제주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나만큼 산나물을 아는 이가 없다” 할 만큼 일가견이 있고 산나물을 좋아하다 보니 산을 좋아하게 됐다.

제주 고사리는 세계적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고사리는 크고 실하나 쓴맛이 나서 달고 부드러운 제주 고사리와 비교할 수 없었다. 백두산 고사리는 제주산 못지않으나 양적으로 따를 수 없다. 제주 고사리의 질·양·맛을 따를 고사리는 없다. 그런데 종재기오롬 탐사 중에 아주 연하고 부드러운 지장나물(만주방언, 한국명 풀솜대)을 만나서 십여 년 만에 달콤한 맛을 보았다.

종재기는 한국에서 종지와 같은 말로 장(醬)종재기, 간장종지라 할 때 쓰인다. 이 말은 제주뿐 아니라 강원·경기·충청·영남에서도 쓰이고 호남방언으로는 종발(이)라고도 한다. 이는 사전적 의미이고, 오롬의 명칭으로 쓸 때도 몇 가지 의미 있어 보인다. 첫째는 다른 오롬에 비하여 ‘작다’라는 의미다. 두 번째는 엎어 놓았을 때 뾰족해 보이니 단연 ‘원추형오롬’일 것이다. 셋째는 작으나 쓰임새가 ‘미미하지 않다’ 꼭 쓰여야 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한국인의 밥상(飯床)에는 밥·국·김치·간장종지가 격식의 기본이다. 그리고, 각종 요리(반찬)의 수효에 따라 3첩·5첩·7첩·9첩·12첩반상으로 구별한다. 왕의 수라상은 12첩 이상이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죽·국수를 내놓을 때도 다른 찬은 없어도 김치와 간장종지는 반듯이 따르듯이 종재기오롬은 제주오롬에서 미미하나 간장종지처럼 제주오롬의 기본이 된다.

제주에서는 ‘1사 1오롬’을 추진해 오롬을 관리하는 데 이곳도 관리하는 곳이 있었다. 동쪽 편에는 관리사(1사1오롬) 표지판이 있어서 탐방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간장종지가 밥상의 기본이듯 제주오롬의 높이에서도 종재기오롬(비고 45m), 둘레도 종재기오롬(573m), 면적도 종재기오롬(22.813㎡)에 비교해 보면 그 오롬의 규모를 알 수 있는 지표가 될 것 같다.

종재기오름은 탐방 시설이 없고 가파른 등성이에는 심은 지 50여 년 돼 보이는 삼나무 사이에 후박·생달·참식·굴거리·나한송·예덕·도토리나무가 보인다. 동쪽은 1136번 도로, 북서쪽은 농지와 곶자왈, 북쪽은 청미래 넝쿨과 가시덤불, 남쪽은 덕천연수원이 자리 잡았다. 비탈진 등성이는 부엽토로 인해 미끄럽고 정상에는 올랐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남쪽 길에서 흐드러진 무꽃 위로 오롬을 바라보니 가슴 아린 4월, 제주의 아픔을 보는 듯 가슴 아프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