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의 비극 기억하는 팽나무, 송악에 덮여 그 무거움 느껴
4·3의 비극 기억하는 팽나무, 송악에 덮여 그 무거움 느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4.1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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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제주 한림 금악마을 4·3길(3)
동카름입구의 팽나무
동카름입구의 팽나무

■ 4·3길 주변의 포제단
오름에서 내려와 마을로 가는 길가에 금악리 포제단이 자리 잡고 있어 4․3길 걷는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오른쪽 소나무와 참식나무가 있는 입구로 들어서는데, ‘酺祭檀(포제단)’이라 새긴 돌 아래쪽에 ‘금악리 1711번지 일원, 포제단은 마을에 제(祭)를 올리는 신성한 곳입니다.’라 새겨 있어 옷깃을 여미며 들어섰다.
1997년 9월에 준공된 포제단은 주차장도 제법 넓게 갖춰 문도 안 달고 개방되어 있다. 깨끗하게 손질된 잔디밭에 화산석으로 신도(神道)를 깔았고, 가운데 제상(祭床)과 비석처럼 크게 신위(神位)를 마련했다. 또 동쪽과 북쪽에 동백, 편백나무 등을 심어 만든 울타리가 분위기를 살린다.
안내판에는 ‘매년 음력 정월 초정일(初丁日)을 택하여 제사 지낸다. 오래 전부터 생이못 주변에 집을 짓고 일주일가량 합숙하면서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고 정성 들여 제를 봉행해 왔는데, 4․3으로 마을이 폐허가 된 후 중단되었다가 마을이 재건되면서 다시 지내게 되었다.’고 썼다. 그렇게 4․3은 집을 마음대로 불태우고 마을 전통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마을 포제단
마을 포제단

■ 코스 분기점 주변의 소들
포제단에서 나와 마을을 향해 걸어간다. 4․3길은 곧바로 내려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얼마 안 가 이정표가 나타난다. 왼쪽으로 내리는 길은 마을의 중심인 벵디못 가는 길로 0.5㎞ 거리다. 이 길은 두 코스의 중심이면서 동쪽으로 새로운 코스 ‘동카름 가는 길’의 시발점이 된다. 새새미가 0.7㎞거리에 있다고 같은 기둥에 달았다. 
오름 기슭으로 나있는 길을 걷는데, 오른쪽 목초 밭에서 암소 떼를 만났다. 모두 노란 한우들로 올 봄에 낳은 새끼들도 보인다. 아직 새 풀이 많이 자라지 않은 시기인데, 이렇게 마음대로 풀을 뜯는 걸 보면 복 받은 녀석들이다. 더불어 이곳이 목장지대였음을 알려준다.
과거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집집마다 암소를 길렀었다. 봄이 되면 새 풀을 뜯기기 위해 오름에 올려 소를 지켰던 추억이 새롭다. 또 여름이면 마을 목장에 소를 올렸는데, 방학이면 부그리(진드기가 피를 빨아 먹고 크게 자란 것)를 떼러 DDT나 BHC 같은 살충제를 갖고 올랐다. 우리 마을 목장은 바로 이곳 금악리 이웃에 있다. 그 때는 소 한 마리 팔면 서울로 유학 간 자식들의 등록금은 물론 자식들 시집 장가보낼 밑천이 되던 시기였으니까.

새가름의 물구덕 진 할망 닮은 나무.jpg
새가름의 물구덕 진 할망 닮은 나무.jpg

■ 새새미와 동카름
새새미는 오름 기슭에 있었는데, ‘새로 만든 샘’이란 뜻으로 중산간에 자리한 이곳 금악리에서는 가장 맑은 물, 깨끗한 물로 인식되어 포제를 지낼 때 사용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지하수를 퍼 올려 음용수로 쓰고 있지만, 당시는 매우 중요한 급수원이었다. 모든 샘이 그렇듯 자주 퍼내어 사용하지 않고 고인 대로 두면 변하게 되는데, 이곳도 예외 없이 물 위에 녹조(綠藻)가 떴다. 
그래도 4․3길을 내면서 목책을 두르고 화산석을 잘라 주위에 깔고 안내판을 세웠다. 이 글을 취재할 때만 해도 앞에 서 있는 복숭아나무와 샘 주위에 있는 나무들에 싹이 나지 않아 을씨년스러웠으나, 지금쯤은 파랗게 잎이 돋아 제법 운치가 있을 터.
새샘 바로 아래로 커다란 시멘트 건물 두 채가 들어섰다. 집 앞 화단에 손을 안 봐 뒤엉킨 채로 피어난 서향(瑞香)의 향기가 사방으로 퍼지고, 정원에 질서 없이 심어놓은 화목들도 빛을 발한다. 가는 곳마다 대나무가 무성하고 농기구들이 제멋대로 나뒹군다. 목장 축사와 관리사가 들어선 곳도 있다.

새로 단장한 새새미
새로 단장한 새새미

■ 동카름과 새카름
‘가름’은 ‘마을 안의 구분된 거리’를 뜻하는 제주어다. ‘동카름, 서카름, 알카름, 우카름’처럼 쓰는데, ‘동, 서’나 ‘우, 알’과 결합될 때는 ‘ㅎ’이 덧나서 ‘카름’으로 발음된다. 따라서 ‘동카름’은 ‘동쪽에 있는 거리나 마을’을 뜻한다. 그렇게 4․3이 있기 전에는 이곳이 마을이었다. 거기서 나와 조금 큰길인 금악북로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세거리가 나타나고 오른쪽에 커다란 팽나무가 보인다. 
송악이 엄청나게 달라붙어 몹시 몸이 무거워 보이는 팽나무 아래엔 ‘잃어버린 마을(동카름)’ 표지판을 세웠다. 4․3 당시엔 50여 가구가 살았으나 불타버리고, 지금은 대나무들만이 그를 증명하듯 부는 바람에 술렁인다. 이곳에서 각생이내까지 남쪽으로 넓게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거기서 더 내려가면 금악로(1121번)가 나타나고 그 길을 따라 동쪽으로 조금 가면 조그만 하천 ‘각생이내’가 나타난다. 거기서부터는 왼쪽으로 그 내를 따라 계속 걷게 되는데, 내 건너에 축사가 있고 수양버들 15그루 정도가 심어져 있다. 마침 봄철이어서 바람에 출렁이는 모습이 이채롭다. 거기서부터 냇가를 따라 조그만 다리가 나올 때까지 가면 된다. 그런데 그 다리 옆에 홀로 우뚝 서서 송악을 쓰고 있는 나무 하나가 허벅 진 설문대할망을 닮았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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