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청 의혹…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미국의 도청 의혹…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4.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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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언론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우리나라의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 논의를 비롯해 동맹국 정부를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이를 둘러싼 여야 간 공방이 치열하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은 이날 한국 정부 내에서 살상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일 포탄을 미국에 제공할지를 놓고 논의가 진행됐다는 내용이 포함된 문건이 유출됐다고 보도했다.

NYT는 다른 문건은 CIA가 만든 것으로 이 같은 한국 내 논의를 어떻게 파악했는지 설명했는데 전화 및 전자메시지를 도청하는 데 사용하는 ‘시긴트’(SIGINT·신호 정보) 보고에서 확보됐다는 표현이 담겼다고 전했다. NYT는 한국 사례를 소개하면서 미국 정보 당국은 러시아뿐 아니라 중요한 동맹에 대해서도 ‘도청’을 해 왔다고 언급했다.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청와대(대통령실)를 도·감청해 온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1970년대 주한미군 철수, 한국 인권 문제 등을 두고 한미가 다투는 와중에 1976년 10월 미국 워싱턴 포스트 보도로 이른 바 ‘코리아 게이트’가 터졌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박동선 등 로비스트를 통해 미국 의원과 공직자를 돈으로 매수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는데 정보의 출처도 놀라웠다. CIA가 청와대를 도청해 이를 파악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도청 사실은 윌리엄 포터 전 주한 미국대사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포터 전 대사는 1978년 4월 한 미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청와대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내가 부임하기 전에 그것(도청)이 중단됐다는 보고를 들었다”고 밝혔다.

2013년에도 미국이 주미 한국대사관을 비롯해 38개국의 재미 공관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 국가안보국(NS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이 동맹국까지 감시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였다. 2016년에는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2008년 미 국가안보국이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대화를 도청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도청 행위가 드러날 때마다 강하게 항의하고 해명을 요구하는 외국과 달리 한국은 1970년대부터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란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이번에도 우리나라는 예전과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실은 12일 이 논란이 어느 정도 일단락됐다고 평가하고 더 이상 외교적으로 문제 삼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주장대로 미국 정부를 상대로 공식 사과를 요구하거나 이번 논란을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다.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오는 26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양국 관계의 신뢰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 이스라엘 등 당사국이 일제히 문건 내용을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게 대통령실 내부 평가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미국 측이 사실상 도청 행위를 했다는 의혹을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이와 다른 해명을 내놓는 것은 문제라며 공격을 이어갔다.

각국 정부가 다른 나라의 정보를 확보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국가 간, 특히 동맹국에 대한 도·감청 의혹이 제기된 건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여야가 국내에서 정치적 공방을 벌일 게 아니라 미국에 대해 해명과 사과를 공식 요구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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