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읽는 시 한 편
봄날에 읽는 시 한 편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4.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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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시인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윤희상 시인의 ‘소를 웃긴 꽃’ 전문

아침에 지인으로부터 받은 시다. 좋은 시를 쓰라며 그가 좋아하는 시를 보내왔다. 쓰러지는 소의 모습을 그려보니 벵삭이 웃음이 나온다. 정말 꽃이 소를 들어 올렸을까? 궁금해진다. 아니지, 아닐 거야. 마음씨 좋은 소가 겨울 내내 봄을 기다린 꽃을 위해 살짝 들어 올려 주었을 거야. 그래서 꽃은 고마운 마음을 담아 힘껏 진한 색을 피우고 달콤한 향기를 선물했을 거라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자주 들르는 꽃집에 가니 이른 봄을 알리는 꽃들이 다 피어 있다. 남보다 먼저 봄을 맞이하고 싶은 조바심에 설란을 샀다. 작년에도 구입했던 꽃이다. 꽃을 다 본 후 화분에 심어놓긴 했지만, 그게 싹을 올리고 꽃을 피우려면 아직도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한다. 하우스에서 키운 꽃을 사서 베란다에 갖다 놓는다. 힘들게 싹을 내밀고 있는 작년의 설란에게 살짝 미안해진다.

모든 작물에는 시기가 있어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는데 쉽지가 않다. 꽃샘추위가 지나기 전에 모종을 사다 심고는 실패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을 귓등으로 들어서이다. 이상기온으로 인해 일찍 심어도 될 것 같은 나의 착각은 번번이 참담한 실패를 안겨준다.

아침에 선물 받은 한 편의 시를 읽고 생각에 젖는다. 소를 들어 올린 꽃은 하우스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란 꽃은 아닐 듯싶다. 겨우내 찬바람 고스란히 맞으며 뿌리가 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여름날 무더위에 고개 숙여 비를 기다리는 간절함을 간직한 야생의 꽃들이기에 소를 들어 올리게 하였을 것 같다.

유심히 보아야 눈에 들어오는 제비꽃이나 민들레도 한몫했으리라. 이제야 싹을 내민 설란이 꽃을 피우기 위해 애쓰는 시간들을 같이 기다려 주리라 다짐해본다. 내가 키운 꽃이 소를 들어 올리지는 못해도 보는 이의 마음에 밝은 미소가 머물게 하리라. 이 봄날, 한 편의 시가 나에게 기다림을 선물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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