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4.0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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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힘과 힘이 충돌하고 있다. 대륙을 봉쇄하고 압박하려는 힘과 그 봉쇄를 뚫고 해양으로 진출하려는 힘이 한반도에서 충돌하기 시작한 지는 이미 백년이 넘었다.

우리는 그 전장이 되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겪고 결국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해방이 되는 듯 했으나 다시 한국전쟁을 겪고 남북이 분단됐다. 그 고통과 상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를 옥죄는 힘은 여전하다. 아니 더욱 강고해지고 있다.

힘과 힘의 충돌은 지진과 화산을 낳는다. 대륙이 이동하고 지각이 변동한다는 사실을 19세기까진 상상도 못했다. 더군다나 지진과 화산의 원인이 대륙 이동과 지각 변동에 있다는 사실은 아예 꿈꾸지도 못했다.

하지만 20세기 과학은 지진과 화산의 원인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땅 속에 있음을 밝혀냈다. 지각은 여러 개의 판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판과 판의 경계에서 지진과 화산이 자주 발생함을 이제 우리는 잘 안다.

눈에 보이는 변동을 만들어내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다. 눈은 현상을 인식하는 중요한 감각기관이지만, 눈만으로는 현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어떤 현상을 만들어내는 인과관계는 단선적이지 않다. 오랜 세월 축적된 아주 복잡한 인과관계가 얽혀 있다.

그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걸 어느 누가 단칼에 잘라내겠다는 건 만용에 불과하다. 그 칼은 도리어 자신의 심장을 겨눌 것이다.

공기는 진공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공기도 물질이다. 물질은 구성 원자에 따라 형태를 달리할 뿐 그 본질은 동일하다. 물질은 에너지다.

인간의 역사는 진공 상태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우리는 수많은 힘의 자기장 속에서 태어나 살다가, 그 속에서 미미한 힘의 흔적을 남기고 죽는다. 우리는 자유롭게 태어나, 자유롭게 살다가, 자유롭게 죽는 게 아니다.

새장 속 새는 자유를 꿈꿀 수 있는가. 그물에 포획된 물고기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 이들은 자신의 부자유와 구속을 느낄 수 있을까. 새장 속과 그물 안이 그들이 생각하는 세계 전부는 아닐까. 푸른 창공과 망망한 대해가 그들에게는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은 아닐까.

현실의 부자유와 구속은 자유에 대한 갈망을 낳는다. 하지만 자유는 입으로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존은 다른 누군가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줄서기가 우리의 자유와 자존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는 데는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자만이 자유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우리는 누구의 심장으로 세상을 느끼고 있는가.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의 눈과 심장이 되어주길, 아니 되어줄 거라 믿고 있는 건 아닌가. 아니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타인의 눈과 심장에 동화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자기 눈과 자기 심장을 갖고 있지 못한 자의 운명은 슬프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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