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없는 사회
어른 없는 사회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4.03 1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종흠 전 한국방송대 제주지역대학장·논설위원

근래 우리 사회는 개인의 생각과 행동이 절대적 가치가 되어 버려 존경과 본받음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어른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각자의 방식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해 행동하게 됨으로써 폭력과 충돌로 인해 생기는 갈등에 대한 중재나 평화적 해결 자체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 결과 사회 구성원들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생기는 충돌이나 갈등은 모두 공권력의 판단과 법의 심판에 의지하게 되었고, 사회적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됐다.

어른은 공동체나 국가 등에서 하나의 구심점을 이루면서 구성원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고 경험, 지혜, 지식 등을 공유하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상호 발전을 추구하는 지도자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넓게는 국가나 민족 차원의 어른이 있을 수 있고 좁게는 가정이나 지역공동체 차원의 어른이 있을 수 있다. 두 사람 이상이 모인 사회에서 그중 누군가를 어른으로 인정하고 공경하면서 따르게 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법을 모색할 저력이 생기게 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예로부터 우리는 삶의 방향이나 지표를 세우는 데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 가르치고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스승, 일정한 크기의 공동체나 조직, 국가 등을 이끄는 통치행위를 하는 사람, 일반인들의 본보기가 되는 수준 높은 이념이나 사상을 지닌 사람, 경험과 지혜가 풍부해 젊거나 어린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사람 등을 어른으로 여겨 공경해 왔다. 범위와 크기에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이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질서를 잡고 갈등을 해결하며 구성원들에게 바람직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순기능을 담당함으로써 공동체, 조직, 사회 등을 발전적으로 이끄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까닭에 사람들은 어른을 존경하며 받들었고 어른은 선한 마음과 모범적인 행동으로 본을 보임으로써 구성원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20세기를 지나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인터넷과 AI 등의 기술 발전으로 정보가 넘쳐나면서 어른의 사회적 필요성은 점차 사라지게 됐다. 학생들은 스승으로부터 배우는 것보다 인터넷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고 공동체나 국가의 구성원들 역시 빠르고 검증할 수 있는 정보들을 마음대로 접하며 습득할 수 있게 됐으니 굳이 어른의 말을 잘 듣고 배우거나 존경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어른이 거칠게 말했다고 어린 사람이 더 거칠게 대들며 갈등을 유발하는 것, 자신의 아이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욕설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 자신의 이념에 맞지 않으면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반대하는 것, 어른이 하는 말은 모두 잔소리라 여기며 세대 간의 만남과 대화를 회피하는 것 등은 모두 어른의 필요성과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린 사람과 많은 사람, 사회적 통솔을 받는 사람과 구성원을 이끄는 지도자, 배우는 과정에 있는 학생과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 등의 관계에서 믿음, 존경, 배려가 사라지면 그 자리에 불신, 멸시, 독선이 자리 잡게 되어 사회의 갈등과 불화가 증폭되고야 만다. 어른과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지혜 그리고 소통이 사라지면서 그로 인해 파괴되는 사회적 질서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미래의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대안, 혹은 해답을 얻는 길이 될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