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유감
박물관 유감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4.0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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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다층 편집주간

팬데믹이 거의 끝나고 나니 바야흐로 활동의 계절인 봄을 맞았다. 학교에서는 현장체험을 나가며 아이들의 얼굴에는 잃었던 웃음이 꽃보다 아름답게 피어난다. 이즈음이면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발바닥이 지면에 닿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들떠 있다. 친구들과 더불어 수학여행을 떠난다는 설렘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수학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박물관 관람이다. 꽤 오래전 수학여행을 인솔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을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를 말하고 반만년의 역사에 대해 수업을 한 터라 박물관 중앙 홀에 있는 연표(年表)를 보고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연표에 단기(檀紀) 표기가 없는 것이 아닌가. 연대기가 CE와 BCE로 표기되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BC는 Before Christ(예수 이전)의 약어로 AD는 Anno Domini(주님 이후)의 의미를 띄고 있어서 비종교인들의 거부감을 덜고 종교적 색채를 제거한 CE(Common Era)와 BCE(Before Common Era)로 표기한다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해도 국립중앙박물관에 단기 표기가 증발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 역사 2333년은 누가 팔아먹었다는 말인가. 역사의 유구함을 자랑하면서 정작 박물관에서 단기 표기를 하지 않고 서기로만 연대를 표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단기 표기를 하고 보조적으로 서기 표기를 하든 그 역(逆)으로 하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문화재 해설사에게 문제를 제기했더니 국제화 감각이 떨어진 사람 취급이다. 세계인이 찾는 국립박물관에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연대기로 표기하는 게 맞는 게 아니냐고 하여 실랑이한 기억이 있다. 지난해 다시 방문했을 때 다시 확인해 보니 여전히 연대표에는 CE와 BCE로만 표기되어 있다.

또 한 번은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학생들을 인솔하여 정문에서 입장한 후에 야외 전시물들을 감상하고 차례로 실내 전시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학급별로 담임교사가 인솔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실내 전시장에서 소란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다면 야외 전시물 감상 시간을 정해야 하느냐고 항의를 했더니 예약할 적에 동의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동의하지 않으면 신청도 할 수 없이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무슨 말이냐고 실랑이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난해 수학여행 때도 같은 지침을 들고 나와 또 인솔교사들과 실랑이했다는 것이다.

다른 관람객들에게 방해하면 주의를 시키고 관리하기 위해 실내에 직원들을 배치하는 것이 아닌가. 박물관은 문턱이 높아서는 절대로 안 되는 곳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뿌리를 학습하는 곳이기 때문에 경직된 분위기로 관람하고 학습해야 한다면, 특히 청소년들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대한다면 안 그래도 꺼리는 박물관 방문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처사일 것이다.

5월 18일은 ‘세계 박물관의 날’이라고 한다. 이를 기념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박물관·미술관 주간’(박미주간)을 운영한다고 한다. 하지만 박물관 문턱이 높고 박물관에서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면 어떤 기획이나 행사를 마련한들 누가 관심을 가지겠는가.

영화 ‘박물관은 살아 있다’를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박물관에 진열된 모든 유물이 밤만 되면 살아 움직이는 기가 막힌 상상력을 발휘한 영화였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박물관은 흘러가 버린 과거의 유물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 살아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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