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에 잿더미 변한 고향 마을 재건한 102살 할머니
4·3에 잿더미 변한 고향 마을 재건한 102살 할머니
  • 현대성 기자
  • 승인 2023.03.30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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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으로 보는 '공동체 회복' 교훈]
현경아 할머니 구산마을 복구주택 지원사업 총무 맡아 동분서주
남편 행방불명에 세 자녀 홀로 키우며 생계 유지하려 밤잠도 줄여
지난 28일 자택에서 만난 현경아 할머니가 4.3 이후 구산마을 복구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28일 자택에서 만난 현경아 할머니가 4.3 이후 구산마을 복구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주 4·3 이후 공동체 회복 역사에서 ‘여성’을 빠뜨려놓을 수 없다. 4·3 이후 여성들은 자녀 양육과 생업을 병행하면서도 폐허가 된 마을을 다시 세우며 제주 사회 공동체 회복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본지는 제주 4·3 75주년을 맞아 4·3 당시 여성의 마을 재건 사례를 통해‘공동체 회복’의 교훈을 찾는다. [편집자 주]

제주시 아라동 구산마을에 거주하는 현경아 할머니(102)는 4·3 당시 남편을 잃고 세 자녀를 홀로 키우면서도, 폐허가 된 마을을 되살려 공동체 회복에 이바지했다.

현 할머니는 제주시 아라동 구산마을에서 남편인 고(故) 오형률씨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1948년 11월 마을 전체가 불에 타면서 두 딸, 뱃속의 아들과 이도동으로 몸을 피했다. 

며칠 뒤 경찰이 찾아와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라며 오형률씨를 끌고 갔고 오씨는 이후 징역 15년형을 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 중 행방불명됐다.

현 할머니는 이듬해 6월 아들을 낳았지만 재산이 모두 사라진 탓에 남의 밭일을 도와주며 끼니를 연명했다. 

막내아들을 낳고 다음 날 바로 밭일을 할 정도로 현 할머니의 생존 정신은 강했다.

덮을 것과 입을 것이 없어 보릿짚을 깔거나 덮고 잤고 보릿짚을 엮을 때는 습기가 많은 밤이 편하다며 밤잠을 포기하고 보릿짚을 엮었다. 
일 욕심에 남의 밭일을 돕다 군경의 습격을 막기 위해 지은 성담 출입 시간을 어기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도동 남문통에서 나무를 해다 팔거나 돼지를 기르며 생활한 현 할머니는 4·3으로 폐허가 된 고향을 되살리는 일에 참여했다.  구산마을 복구주택 지원 사업단 일을 도맡아 동분서주했다.

구산마을 주민 김병석씨는 30일 본지와 만나 “당시 복구주택 지원 사업단이 꾸려졌는데 현 할머니가 재건 사업에 기여를 많이 했다. 신청해서 떨어지는 마을도 많았다"며 "현 할머니는 똑부러진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4·3 복구주택 지원 사업에 지원한 마을은 7개 마을이지만 구산마을을 포함해 4개 마을만이 복구주택 지원 사업 기준을 통과했다.

현 할머니는 지난 2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주춧돌 30개를 세워야 한다는 게 지원 기준이었다. 마감이 다가오는데 주춧돌이 28개 밖에 없어 2개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며 “마을 주민을 설득해 밭 한편에 주춧돌 2개를 넣어 겨우 지원 기준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구산마을 복구 이후 현경아 할머니는 아라동부녀회장을 18년 간 역임하는 등 마을에서 인정받는 일꾼이 되며 마을 일을 살뜰히 살폈다.

현 할머니는 또 이도동 남문통에서 살 당시 인연을 맺은 광명사의 신도회장을 20년간 맡았다. 이는 사라진 남편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었다.

남편인 고(故) 오형률씨는 2021년 1월 21일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고 70여 년만에 억울함을 풀었다.

현대성 기자  canno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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