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지기 위해선’
‘날이 지기 위해선’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3.2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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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칠 작곡가·음악평론가·논설위원

인생을 살다 보면 수도 없는 나날들이 해가 지고 또다시 해가 뜨는 것을 경험을 하면서 살아간다. 반복되는 날들 속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살아가는 우리들, 날이 지기 위해선...이라는 말은 어두움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어떻게 날이 지는 것인가? 라는 데에 그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누군가는 해가 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해가 있어서 그 무엇이 불편한 것인지, 해가 사라지고 나면 간절히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일까? 어둠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세계가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세계가 밝은 세계에 집중이 되어 있어서 어둠의 세계가 우리들에게 생소한 세계이며, 어쩌면 어둠의 세계에 전혀 익숙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신동집님의 시, ‘날이 지기 위해서’을 살펴보자

날이 지기 위해선

한 사람의 들판이 저물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의 날은 저물어도

상기 남은 한 사람의 들판,

해 그늘은 황망히 밀어 닥치고

으스스 언저리는 어둡다

이러할 때 사람은 무엇을 잃어야 하나

한 사람의 가장 귀한 무엇을 잃어야 하나

갓 돋은 저

별을 맞이하기 위해선,

ㅡ신동집 시인의 '날이 지기 위해선' 전문ㅡ

산 넘어 해가 질 때면 어린 시절에 살았던 서귀포 마을은 고요 속으로 젖어들고, 어둠이 밀려오면 낮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 있어서 그 어둠이 좋았다. 낮이건 밤이건 나에게 있어서 당시는 음악은 전혀 무관한 다른 세계이지만 그러한 만큼 분위기에 알맞는 가사가 있는 음악이 있다는 것에 행복해 있었다.

사계절과 아침, 낮, 저녁, 밤에 어울리는 음악들이 있다는 것에 별 생각 없이 지나온 시절,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온 것일까? 중학교 3학년부터 시작한 음악, 고등학교,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나의 순수한 음악의 세계에 대한 이상과 현실 속의 음악들과 깊은 괴리감()이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인생의 갈등들이 음악 속에 그대로 녹아들고 있음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지나오면서 경험한 수도 없이 많은 날들, 그 속에 수도 없이 날이 지고 어둠이 오고 그리고 또다시 새벽과 아침을 맞이하면서도, 아직은 내가 버려야 할 것들에 전혀 마음을 쓰고 있지 않고 있는 내 자신의 무지한 시간들, 똑 같이 반복이 되고 있는 시간들 속에 이익과 욕심에 마음이 함몰되어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날이 지기 위해선 지금 지니고 있는 욕심과 욕구들을 잠시 버려야 하는 것이다. 어둠이 오면 과연 어떠한 세계가 있길래---? 해가 지고 밝음이 사라지면 우리들에게는 고요한 어둠이 등장한다. 갓 돋은 샛별이 나타나고 은하수와 수많은 별들이 쏟아진다. 그리고 밝은 달이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낮에는 전혀 만나볼 수 없는 세상, 매일처럼 만나는 세계이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교차하는 세상 속에서 이론과 학문 그리고 경험에서 체득한 것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연의 순리를 벗어난 인생의 이론과 지식들이 인간의 마음들을 욕심으로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갓 돋은 저 별은 자신의 희망이며, 구원의 세계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사람의 가장 귀한 태양을 버리고 밝음을 잃어 버려야 만나는 별, 나에게 있어서 날이 지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가장 귀한 내가 소유한 것은 무엇인지, 갓 돋은 저 별을 진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내 자신인지를 오늘 조용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나에게 지나치게 몰두하여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욕심들이 가득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어둠 속의 아름다움과 샛별, 달, 은하수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생은 새로운 세계들이 자신을 향해서 무수하게 밀려오곤 한다. 욕심 안에 있기에 새로운 세계는 스쳐 지나가고 내가 발견하지 못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세계는 오늘도 계속 되고 있다.

한 사람의 들판이 저물어야만 날이 지고, 그 다음에 샛별이 오는 것임을, 나의 가장 귀한 무엇을 잃어야만 만나게 되는 새로운 세상, 그때에 겪는 언저리만 어두운 것이 아니라, 그 후에 기대하는 또 다른 희망과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는 기대감을 갖는 것이다.

인간은 새벽 다음에 아침, 낮과 저녁, 어둠과 밤이라는 자연의 순리 안에 살아가고 있기에, 가장 귀한 무엇을 잃어버림에 익숙한 인생이어야 하며, 그 일에 대하여 서운함과 아픔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를 희망해 본다.

-끝_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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