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들려준 말
내게 들려준 말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3.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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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수필가

봄은 ‘처음 한걸음의 계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희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희망. 사실 최근에는 내 마음에 없는 거의 잊혀진 단어다. 오랫동안 꺼내지 않아서인지 낯설고 쑥스러운 마음마저 든다.

국어사전에서 희망을 찾아보니 ‘좋은 결과가 나오거나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바라다’라고 쓰여있다.

희망이 인간을 만든다.

열광은 언제나 열광하는 자의 몫이다. 승리는 유능한 자의 무기가 아니라 가슴 뜨거운 자의 힘이다.

불안하고 주저할지언정 희망을 앓으며 지냈던 기억도 있기는 있다.
생각해보니 이미 완료된 희망도 좋았다. 늦어질지언정 가 보는 희망도 좋았다. 오히려 완성된 희망보다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루어진 희망은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아직 어중치기로 포기하지 말라는 마음을 준다.

찬란하다 한들 젊음을 지켜 낼 장사는 없고 초라하다 한들 늙음을 막아 낼 장사는 없다.

산책길에 많은 꽃들과 만난다. 숨겨져 있는 그들의 비밀을 발견하고 알아내는 일에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많은 봄꽃 중에 희망이라는 꽃말을 달고 온 개나리. 늦어진 희망도 다가가는 희망도 희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색은 분명 황금빛일 게다. 엄한 추위를 이겨내고 이제는 돌아 갈 수 없을 만큼의 강함으로 피워낸 꽃.

개나리는 부끄러운듯하면서도 희망의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추위를 이겨내고 봄을 기다린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꽃 앞에 멈춰서는 순간을 잊는다면 인생, 그 찬란함 또한 없으리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희망이라는 단어와 상관없이 지내던 내가 문득 꽃 앞에 멈춰 선다.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날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요. 그만하면 된 것 아니냔 말이요?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밤이 오는 거요.’

문득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구절이 기억난다.

나이 들었다고 너무 서둘러 희망을 놓았나. 그렇게 살아버리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찾지 않고 바라지 않으면서.

나이 드는 게 비극적인 이유는 우리의 영혼은 젊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고 앙증맞은 개나리의 노오란 꽃잎이 내게 이렇게 속삭인다.

‘내 비장의 무기는 희망이라고.’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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