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이 들어선 양식장…섬과 섬을 잇는 다리 연상케 해  
빽빽이 들어선 양식장…섬과 섬을 잇는 다리 연상케 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3.2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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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 양식의 원조 섬 노화도(蘆花島)
전복양식의 원조 섬 노화도 해안은 바다밭 양식장이 빽빽이 들어찼다.
전복양식의 원조 섬 노화도 해안은 바다밭 양식장이 빽빽이 들어찼다.

# 드넓은 농토가 있어 주변 섬의 중심지 역할 

염등리 앞 갯벌에 갈대꽃이 피면 장관을 이룬다는 노화도(蘆花島)는 전복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주변 큰 섬으로 보길도, 소안도가 이웃해 삼 형제섬인 듯하다. 보길도의 길목이기도 하지만 소안도를 갈 때도 노화도 동천항을 거쳐 간다. 그래서 다섯 번을 찾았던 노화도, 이번에는 노화도 이목항에서 출발하는 넙도를 가기 위해 다시 찾았다.

남해안 섬들 중 독특한 것이 섬 가운데 큰 평야를 형성한 섬과 섬 전체가 산으로 이뤄진 섬으로 구분이 된다. 진도나 도초도 등 몇몇 섬은 섬 해안으로 산들이 둘러서 있고 섬 중앙에 마치 육지같은 평야가 형성되어 놀라기도 한다. 노화도가 섬 중심지에 넓은 논밭을 이루고 있는 섬이지만 해안에는 온통 양식장시설이 바다가 마치 밭을 이룬 듯 보인다. ‘저 양식장 건너면 보길도 가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할 정도로 빽빽이 설치됐다.

완도 화흥항에서 40분 정도며 노화도 동천항에 들어갈 때 거대한 거문고 모양의 교량이 보인다. 노화도와 구도를 잇는 연도교다. 이 연도교를 설치한 목적은 구도를 거쳐 소안도까지 다리를 놓기 위해 먼저 구도까지 설치된 연도교다. 소안도까지 다리가 놓인다면 노화도 보길도 소안도는 모두 다리로 다닐 수 있게 된다는 섬 주민의 설명이다.

노화도는 면적 25.01㎢, 해안선 길이 41㎞, 최고점이 148m로 반대편에 있는 보길도와 소안도와는 달리 높은 산이 없는 섬이다. 동천항에서 차를 타고 이목항으로 달리다 보면 넓은 평야가 나온다. 도청리로 과거 삼도진의 도청이 있었기 때문에 노화도의 중심이었던 곳, 이곳에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여기서 1년 농사를 지으면 섬 주민들이 4년을 먹고 산다는 기록이다. 노화도가 주변 섬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도청들, 동천들, 충도들, 신양들, 드넓은 농토가 있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이치산이라는 작은 능선 하나 넘어서니 노화도와 보길도 사이 국가 어항 이목항이다. 바로 앞에 보길도가, 왼쪽에 소안도가 있어 천혜의 자연항이다. 일대가 노화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이목항을 중심으로 모든 배가 드나들어 ‘작은 목포’라 부를 만큼 번창했던 곳이다. “노화도가 지금은 인구가 4000명 정도지만 한 때는 2만명이 넘는 사람들로 북적였던 섬이었지요. 그때 노화 장날이면 주변 섬은 물론 멀리 추자도에서까지 노화 오일장 보러 올 정도였어요. 오일장 날이면 노젓는 배, 돛단배, 똑딱선, 통통배를 몰고 오기 때문에 이목항 일대는 배들로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고 옛 추억을 자랑한다.

이목항에서 보길도를 바라보며 고개를 우측으로 돌리면 빨간 아치교가 보길도를 잇는 440m의 연도교다. 이 다리가 없을 때는 노화도 이목항을 거쳐 보길도로 갔었지만 지금은 완도 화흥항에서 동천항으로, 해남 땅끝마을에서 산양진항으로 오는 두 개의 항구가 이목항을 대신하고 있어서인지 항구 안에는 수많은 전복양식장 시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섬 중앙의 넓은 평야.
섬 중앙의 넓은 평야.

# 완도군 최고 부자 마을 미라리

섬을 둘러 보는데는 어려움이 없다. 전복 원조마을 미라리를 찾았다. 한 때는 김 양식을 주로 했으나 김이 사양길로 접어들자 미라리 마을은 1980년 초반부터 본격적인 전복양식을 위한 연구를 시작, 1996년 몇몇 주민이 전복양식으로 소득을 올리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에 ‘전복마을 미라리’라는 안내판이 서 있고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다른 마을과는 달리 주택들이 화려하다. 완도군에서 조사한 결과 126가구 중 84가구가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완도지역 ‘최고 부자 마을’로 알려졌다. 그래서 인지 마을 곳곳에 고급 승용차뿐만 아니라 골프연습장, 스크린 골프장이 있고 마을 선착장에는 크레인이 설치된 작업선이 빼곡이 세워져 있다. 전복양식이 성공하면서 섬을 떠났던 젊은이들이 다시 섬을 찾아오고 있다고 전한다.

한 기록에 보니 노화도 구목리와 신리, 석중리에 납석을 생산하는 광산이 있다고 해 찾아 나섰다. 이 섬에 동양 최대 납석 광산이 있어 연간 65만t을 일본과 동남아에 수출해 많은 외화를 획득했다고 한다. 납석은 화장품, 고급건축물 재료로 사용되는 광물로 일제 강점기 때부터 납석광산이 개발됐다고 한다. (한국의 섬 이재언)

섬에 이렇게 큰 광산이 있다는 기록에 그 현장을 찾아 나섰지만 그 현장은 찾을 수가 없었다.

1년전 노화도에 왔을 때 섬을 돌다보니 아주 오래된 비석이 서 있어 스치며 보니 ‘제주 부씨 집안에서 세운 비석’이었는데 당시 태풍 때문에 바삐 돌다 보니 자세히 살필 수가 없어 돌아갈 때 자세히 볼 생각이었지만 잊어버렸다. 다시 그 비석을 찾으려 섬 곳곳을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섬 주민에게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돌아섰다.

마을을 돌다 보면 돌담들이 정겹게 정돈됐다. 특히 동천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천구마을’ 돌담 사이에 노화도의 상징물을 벽화로 그려놓고 있어 눈길을 끊다. ’부자 섬’노화도, 섬 중심에는 넓은 들판, 섬 주변 해안에는 양식장들이 즐비해 가는 곳마다 생기가 넘쳐 보인다.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크레인으로 전복양식장작업을 하고 있는 주민.
크레인으로 전복양식장작업을 하고 있는 주민.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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