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 법정사 길을 걷다
무오 법정사 길을 걷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3.2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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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용 수필가

꽃샘추위를 떨치기에는 이른 3월 초순, 혜향문학회에서 주최한 문학기행 길에 나섰다. 버스에 올라타고 5·16 도로를 따라 한라산을 가로질러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서귀포시 도순동 법정악 능선에 위치한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였다. 

법정사 도량 안에는 오래전 사찰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들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다. 

법정사의 옛 명칭은 ‘법돌암’이다. 1911년 안봉려관 스님과 방동화 스님 등 제주불교계 인사들의 노력으로 창건된 사찰이다. 법돌암을 둘러싸고 도순천과 고지천에서 옥소리를 내며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은 겨울에도 얼지 않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그래서 절이 지어졌으리라…. 

법정사는 명실상부한 제주 항일운동의 산실이고, 본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무오법정사 항일운동은 기미년 3.1운동보다도 앞선 1918년 10월 7일이다. 당시 법정사 주지 김연일 등 승려들은 1914년경부터 일본의 국권 침탈의 부당함을 신도와 인근 주민들에게 설명하며 항일의식을 심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항일운동에 참여한 인원이 도순리, 하원리, 월평리, 영남리, 서호리, 호근리, 강정리, 주민 등 700여 명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서귀포를 거쳐 제주읍까지 진행을 계획하였으나 결국 총칼을 피할 수 없었다. 법정사는 불태워졌고, 이곳에서 항일운동에 참여한 예순여섯 명은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에서 벌금형까지 선고되었을 뿐 아니라 재판 전과 수감 중에 옥사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가혹한 처벌을 받은 것이다. 일본은 강력한 무단통치를 감행하여 가혹한 탄압을 자행하는 한편, 민족 고유문화의 말살과 경제적 지배의 철저화로 한국 민족의 정당한 민족적 저항의 기반을 없애고자 하였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끈질기고 강렬한 독립 투쟁 정신을 고취하였을 뿐 아니라, 일제의 무단통치 방법을 이른바 문화통치로 바꾸게 하였다. 여기에는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의 단초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는 2003년 11월 12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1-1로 지정되어 2004년 법정사 항일운동 참여자들을 기리기 위한 위패봉안소와 기념탑이 세워졌다. 기념탑에는 불교의 정신으로 승화된 이미지를 담아 목탁과 연꽃 그리고 바람을 상징하였고, 기단에는 태극 문양을 넣어 당시 국권 회복을 위해 희생하신 항일의사들의 애국심을 형상화 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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