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와 어뷰징
코로나 블루와 어뷰징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3.1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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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진 시인

새벽 세 시, ‘어뷰징 활동 감지’라는 사유로 내 스마트폰 계정 콘텐츠 생성이 제한되었다. 네 번째 경고다.

스마트폰 화면에 뜬 어뷰징이라는 용어는 생소했다. 

어뷰징(Abusing)이란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오용, 남용, 폐혜, 학대’ 등을 뜻하는 말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통한 클릭수를 늘리기 위해 중복 반복 기사를 전송하거나 인기 검색어에 올리기 위해 클릭 수를 조작하는 행위를 뜻한다고 한다. 

그저 지난 내 사진들을 다운로드 해서 추억에 잠기며 일기나 시나 수필을 쓴 것 뿐인데 이런 황당한 일이라니…기계의 한계성이다.
원인은 과다한 사용으로 내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을 하지 못한 데 있다. 출퇴근하면서 만나는 구름, 나무, 꽃을 찍거나 수업하면서 아이들의 작품을 찍는 것이 취미다. 어쨌든 사진들을 다 지워야 사용 가능하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코로나 증상은 감기 증상과 같다고 했지만 감기의 열배나 되는 고통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일주일간 격리 상태일 뿐만 아니라 열과 땀과 두통으로 혼미하여 삶과 죽음 사이를 오고갔다. 또 혼자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가족들까지 감염되어 본인이 아픈데도 가족들의 밥을 챙겨줘야 하니 너무나 힘겨웠다.

모든 것과 단절된 데다 카메라 작동도 안 되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멍하니 소파에 누운 채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메모리가 풀인 스마트폰을 잡고 옛 사진들을 지우려고 갤러리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한 상황에 맞딱드렸다. 코로나에 앓고 마음이 약해진 탓일까. 옛사진을 볼 때마다 지난 순간들이 그리웠고 사진들이 작품처럼 멋져 보였다.

그래서 내 마음을 흔드는 사진들은 다시 밴드에 삽입시켜 짧은 메모 같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멈출 수가 없었다. 독서, 컴퓨터에 앉아 글쓰기 등 중요한 일은 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시들거리니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추억으로의 여행을 한 셈이다.

원래 몰입하는 성격이라 옛사진을 파고들면 들수록 중독처럼 끊을 수 없었다. 내 사진들을 밴드에 옮긴 횟수가 많다 보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제한을 받게 된 것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코로나 블루가 나를 침투했다.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해 법화사로, 보목리로, 쇠소깍으로, 한라수목원으로 자연과 조우하며 치유하려고 애썼다. 그때는 남편의 카메라로 대신했지만 그 덕에 서서히 코로나 블루가 사라졌다.

어쨌든 코로나를 극복하게 해준 건 사진에 대한 열정이었다는 건 자명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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