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호의 난, 슬픈 역사가 쌓인 돔박이오롬
목호의 난, 슬픈 역사가 쌓인 돔박이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3.09 1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3. 돔박이오롬
너븐드르 초원의 푸른 목초밭 너머로 비고 51m의 볼록하고 통통한 톰반(돔박)오롬이 보인다.
너븐드르 초원의 푸른 목초밭 너머로 비고 51m의 볼록하고 통통한 톰반(돔박)오롬이 보인다.

광평리가 소재한 대정현은 고려 시대 때 서도현이 조선조 1416년에는 한라산 남쪽을 동서로 나눠 동쪽에 정의현(성산·표선·남원·서귀포 동쪽)과 서쪽에 대정현(서귀포 서쪽·중문·안덕·대정)이 됐다. 돔박이는 제주목 구우면(애월면)에서 남쪽 대정현 서북쪽에 경계를 이루는 안덕면에서 제일 북서쪽에 자리 잡은 너븐드르로, 광평리(廣坪里) 산 89번지에 위치해 있다.

너븐드르는 안덕면에서 제일 서북쪽에 자리 잡은 고산지대로 한라산 안덕면에서 제일 서북쪽에 접한 곳이다. 너븐드르에 세 개의 오롬이 연이어 있는데 제일 북동쪽에는 왕2메, 중간에는 괴수치, 남서쪽에는 돔박이오롬이다. 다른 곳이라면 너븐드르 큰오름→셋오롬→족은오롬이라고 했을 법도 한데 이 세 오롬은 자락을 맞대고 있는데도 모두 다른 이름이다. 너븐드르의 큰 오름 격인 왕2메, 셋오롬격인 괴수치, 족은오롬 격인 돔박이오롬이 연이어 있다.

너븐드르(廣坪里)에는 모두 5개의 오롬이 있는데 여기 세 오롬 외에 동쪽으로는 이돈이오롬, 남쪽으로는 족은대비악이 있다. 그런데 큰대비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는 위의 세 오롬과 대비하여 족은대비악으로 불린 것일까? ‘대비(對比)’라는 말은 몽골어로는 ‘아딜트갈(АДИЛТГАЛ)’라 쓰인 것으로 보면 이는 한자어로 쓰인 것일까?

‘목호의 난’은 제주에서 삼별초군을 진압한 고려 원종 14년(1273), 탐라에 ‘다루가치총관부(達魯花赤總管府)’를 두고 ‘탐라목마장’을 건설하고 몽골인 테우리(牧者)들로 말을 키우게 했다. 그 뒤 원·명 교체기인 공민왕 19년, 1370년에 원나라와 의리를 지키려던 고려는 명나라와 국교를 수립해 1372년에는 제주에서 산출되는 말을 명나라에 보내게 됐다.

이때 목호(말을 많이 가진 자들) 석질리·필사초고·독불화·관음보 등은 명나라로 송마(送馬)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켜 명나라 간선어마사(유경원)과 제주목사 이용장(李用藏)을 살해하게 된다. 그러자 정부는 판관 문서봉을 권지목사로 추대하고 송마를 청하나 사태는 더 악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명나라가 북원(北元) 정벌을 위해 제주에 말 2000필을 요구하게 된다.

고려는 명나라가 2000필 말을 청하나 목호들은 “원세조가 보내준 말을 적국 명나라에 보낼 수 없다”며 거절한다. 이에 공민왕은 최영(崔瑩)을 여명연합군 대장으로 보내어 목호들의 토벌을 명한다. 그 규모는 전함 314척, 군인 2만5600여 명으로 함덕포·명월포로 상육하는 데 당시 이 난으로 제주 인구의 절반이 죽는다. 그 발발 지가 너븐드르의 왕2메-괴수치-돔박이다.

이 세 오롬의 주위는 말 그대로 평평한 너븐드르 초원이다. 그 중 왕2메는 제주 동쪽에 다루치가 주재한 왕1메(대왕산)와 대비해 서쪽에 있으니 왕2메인 셈이다. 여기서 왕은 징기스칸을 말한다. 너븐드르 동쪽은 왕2메, 중간의 괴수치, 제일 끝이 돔박이라 했는데 문제가 있다.

‘오롬나그네 2’에서는 주위의 묘지에 동백악·동박이악 또 다른 말로 동백이라고 쓰였다. 또한, 마을 사람들도 그걸 확인시켜줬다 한다. 그러나 필자가 항상 말하듯이 여러 개의 한자로 쓰인 것은 틀림없이 음차(音借)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몽골어로 이 오롬은 ‘톰반(ТУМБАН)’이라고 쓰였는데 이는 형용사로 ‘불룩한, 통통한’이란 말이다.

왕2메 오른쪽을 돌아 동쪽으로, 다시 산록남로를 돌아서 만불사에 주차하고 오롬을 오른다. 그런데 이 오롬 어디에도 동백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이 오롬은 박정희 군부정권이 강제 식목한 시킨 삼나무가 가득하고 편백나무와 소나무도 가끔 보인다. 그 아래 또는 서쪽 편에는 푸른 나무들이 보여 혹시 동백인가 싶어 뛰어가 보아도 푸른 상록수들이나 참식나무들이다.

정상을 오르는데는 힘들지 않은데 정상을 오르는 동안 나무숲이 으슥하고 찔레가시덩굴이 옷을 잡아끌어 소름 끼친다. 국수나무덩굴·다래덩쿨 등이 가득하고 윤노리나무 속에 억세와 고사리 정도다. 불룩한 동산을 올라 북동쪽으로 보니 열린 굼부리에도 가시덩쿨로 덮여 있고 마른 고사리·억세를 헤치고 나가니 바로 연이어 괴수치로 나가는 길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는 붉은 지붕들이 연이어 있는 연립주택단지가 보이고 괴수치·왕2메가 보인다.

가는 봄, 행여 동백꽃을 볼까? 동박새를 만날까? 하여도 그건 꿈이다. 만불사의 저녁 예불 소리를 들으며 허무하게 발길을 돌린다. 비끼는 저녁 햇살에 ‘왕2메-괴수치-돔박이’를 감싸는 넓고 평평한 푸른 초원에 통통하고 불룩하게 솟은 세 오롬을 보며 700년 전 허무하게 죽어간 몽골 이민자들의 비명소리가 싶어 돌아보아도 빈 하늘에 떠도는 흰 구름뿐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