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춧국
배춧국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3.0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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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자 수필가

병원에 드나들며 부모의 마지막을 지켜야 하는 자식의 무게는 무겁다. 목구멍 넘겨 드릴 부식 걱정도 해야 하고, 일상은 무너져간다.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며 배추를 심기로 했다. 우선 잡초부터 없애고 흙을 골랐다. 메마른 흙이 푸석거렸다. 비가 온 지 오래되어 작물을 심는 일은 요행을 바랄 수밖에 없다.

햇살은 작물이 빨리 자라기를 시샘하는 듯 이글거린다. 인내를 가지고 물을 주어 가며 들여다보지만, 잎이 누렇게 변해간다. 자칫 태양열에 다 녹아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비라도 시원하게 내려주면 좋으련만, 도와주지 않는 날씨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차라리 사 먹는 게 속 편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지나친 관심은 부작용을 낳는다고 했던가. 어쩌면 작물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땅속으로 뿌리내리는 힘이 약한 탓인지, 생장 상태가 시원치 않다. 나름 비료도 주었는데 내 욕심이 지나쳤는가. 적당한 상태를 가늠할 수 있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무관심이 때로 뜻하지 않은 행운을 가져다줄 거라는 생각에 잠시 관심을 끄기로 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할지 모를 일이다. 

처음 배추 모종을 살 때만 해도 얼마나 많은 기대를 했는지 모른다. 부모님을 위하여 배추김치도 만들고, 배추무침, 배추전 등 겨울 초입에 있을 상황들을 미리 상상하곤 했었다. 하지만 겨우 손바닥 길이만큼 자랐을 때 그런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아버지에게는 딱 한 번의 배춧국이 고작이었다. 어느새 자란 텃밭의 배추는 이제 어머니 차지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견딜지 앞날을 잴 수 없는 지경이다. 마음의 준비를 할 뿐, 더 이상 뾰족한 수도 안 보인다.

부모 곁에서 마지막 순간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지만, 어쩌겠는가. 애써 씩씩한 척 요란을 떠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단지 요기 거리 해결하는 정도를 가지고 최선인 양 스스로 위안 삼는다. 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자식인 나는 그저 구경꾼으로 바라볼 뿐이다. 마지막 고통 누구와도 함께 나눌 수 없다. 오로지 혼자서 가야 하는 길,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화려하게 꽃장식을 받으면 여행 준비는 끝난다. 자식들은 몌별의 아픔을 삼키며 성대하게 장례를 치른다. 남는 것은 없다. 슬픈 허탈감에 몸부림만 칠 뿐이다. 

배춧국을 끓이며 지난날을 돌아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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