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의 왼쪽 날개 족은지그리오름
한라산의 왼쪽 날개 족은지그리오름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3.0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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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족은지그리오롬
잔설이 남은 푸른 목초밭 너머에 보이는 족은지그리오롬.
잔설이 남은 푸른 목초밭 너머에 보이는 족은지그리오롬.

조천에서 남원에 이르는 남조로 동북쪽에는 이기풍 선교사 기념관이 있다. 그 입구에서 1㎞ 남서쪽으로 더 가면 석다도 제주의 자연·역사적 돌들이 총집합된 돌문화공원이 있다. 이기풍 기념관에서 더 나가면 바눙오롬이 있고 서쪽 들판 너머에 족은지그리오롬이 있는데 돌문화공원에서는 북서편이다.

족은지그리오롬은 조천읍 교래리 산115번지에 있다. 해발은 504m이고 비고(산 높이)는 69m, 둘레는 2164m이다. 큰지그리오롬의 비고는 118m로 족은지그리오롬과는 49m의 차이다. 그러나 바눙오롬 앞에서 보면 큰지그리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고 족은지그리는 가까이 있으니 두 산의 높이는 비슷해 보인다.

족은지그리오롬은 말굽형 굼부리로 남동향으로 열려 있다. 또한 큰지그리오롬도 말굽형으로 그 방향은 남서쪽으로 열려 있다. 두 오롬의 굼부리가 모두 열려 있으나 그 방향이 다른 것은 두 오롬이 동시에 분화한 것이 아니라 분화 시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굼부리가 열리는 것은 곧 분화 당시에 풍향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족은지그리오롬은 제주시 교래자연휴양림의 종점인 큰지그리오롬 서북쪽에 있다. 그러나 이 오롬을 탐방하려면 오히려 바농오롬 주차장에서 서쪽 목초밭으로 나가야 한다. 족은지그리오롬은 북동쪽으로는 바농오롬과 남동쪽으로는 큰지그리오롬이 있다. 그러나 족은지그리오롬은 바눙오롬과 큰지그리오롬과 달리 탐방로가 전무한 야생의 모습이다.

제주도 북쪽의 앞바다 즉 한반도에서 본다면 좌면이 조천·구좌 쪽이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보면 그 반대이다. 탐라국(영주목) 당시 좌면은 그 후에 구좌면과 신좌면으로 나뉜다. 신좌면은 구좌면과 달리 해방 후에 면소재지를 따라서 조천면이 됐다. 큰지그리, 족은지그리오롬은 신좌면(조천읍) 정남향에 있으며 남쪽으로는 한라산이 가까운 중산간 교래리에 있다.

조선조 때 제주목사 이원조가 쓴 ‘탐라지초본’에 이 오롬은 지기리악(之奇里岳)으로 표기돼 있다. 그래서 최근까지 불린 명칭은 ‘지그리오롬’이다. 그렇다면 이 명칭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인지 아직까지 밝히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명칭이 제주어에서 온 것인지? 한국어에서 온 것인지? 만주어나 몽골어, 또는 한자어에서 온 것인지 밝히지 못 하고 있다.

제주어에서 온 것이라면 ‘지꾸리(찍구리)’에서 온 것으로 생각해 본다. 제주어 ‘지꾸리’는 한국어 직박구리를 말한다. 몽골어로 직박구리를 찾아보니 ‘복잡하다, 시끄럽다, 어지럽다. 혼란하다’라는 뜻으로 나온다. 그 의미는 지그리오롬의 뜻과는 비슷한 점이 있어 보이나 비슷한 음은 찾을 수 없었다. 한국어 ‘지그리’는 ‘지그재그’, ‘지그리-하다’는 뜻으로 ‘지껄이다’의 고어이다. 그러니 지그리 오롬이 한국어에서 유래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동북지역에는 만주족 자치지역이 있고 만주어도 있었으나 만주어는 완전히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한자어는 조선조 때 지기리(之奇里)가 음과 뜻으로 유사한데 그 기원은 몽골어로 보인다. 몽골어의 ‘치게레이(Чигээрэй)’는 치게리→지기리→ 지그리로 변환 된 걸로 보인다. 또 하나는 ‘지구르(ЖИГҮҮР)’로 이는 ‘날개·측면·옆면’으로 지그리오롬은 한라산 날개로 보면 북쪽 측면에 있다는 뜻으로 이 명칭이 조선조 때 지그리오롬의 원형으로 보인다.

교래자연휴양림은 제주의 다른 자연휴양림과 달리 인공조림지가 많지 않다. 제주시의 절물자연휴양림(제주시 봉개동), 붉은오롬자연휴양림(서귀포시 표선면), 사려니숲 등은 소나무· 삼나무·편백나무 등의 인공조림지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교래자연휴양림은 제주 토종 나무들이 많으나 정작 지그리오롬은 오롬 아래편 서쪽에 편백나무 숲이 조금 자리할 뿐이다.

큰지그리오롬과 달리 족은지그리오롬은 인공림이라 할게 없고 제주산 나무들이 가득하다. 산딸낭·윤낭(때죽)·고로쇠·단풍·산뽕·구지뽕·윤노리나무와 그 아래로는 작살·산상·가마귀쥐똥·가막살나무들이 가시덤불 속에 어지럽다. 족은지그리는 탐방로가 없어서 접근이 쉽지 않다. 그리고 잡목들이 쓰러지고 뽑히고 썩은 나무들이 그나마 생긴 샛길도 막아 버린다.

지난 2월 초 족은지그리오롬을 다시 탐방했다. 바눙오롬 서북쪽에 있는 족은지그리오롬은 푸른 목초밭 너머에 오뚝하다. 그러나 잔설은 푸른 목초밭 구석지, 나무 그늘과 바위틈, 큰 나무 아래 숨어 있으나 푸른 잎으로 겨울을 보낸 새우란 잎들이 가냘프다. 지난 여름 바위를 타고 오르던 바위수국은 시들어 보이나 줄사철과 송악줄은 이 겨울에도 푸른 빛이다. 우수가 지나고 봄이 벌써 온 듯싶어도 윤이월 추위는 아직도 동장군이 붙잡고 있는 듯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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