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의 축성보고서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의 축성보고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3.0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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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공사 물품 수량·단가, 품삯까지 다 기록
훼손됐던 성곽 복원 근거가 된 기록유산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수원화성박물관 2016) 표지.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수원화성박물관 2016) 표지.

지금까지 본란에서 소개했던 책들은 모두 내가 직접 소장하고 있던 책들이다. 그 중에 지금은 주인이 바뀌어 박물관 같은 기관이나 개인 소장가의 품에 안긴 책들도 상당수 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책은 그 순서가 바뀌었다. 다른 이가 애지중지 소장하던 책을 오늘의 소개를 위해 어찌 보면 강탈(?)해 왔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렇다.

최근 갑작스런 집안 사정으로 연달아 제주를 떠나 원고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지난번에는 그래도 책을 골라 놓았던 터라 괜찮았는데 이번엔 서울에 도착한 후에야 연락을 받았다. 그 와중에도 본가에 있는 책들 가운데 생각나는 놈이 있어 쓰겠다고는 했지만 이를 어쩌랴. 책의 상태가 아주 나빴다.

혹시나 하고 가까운 헌책방을 찾아 나섰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처음 찾아간 곳은 휴무, 두 번째는 당분간 휴업, 마지막은 간판만 있고 건물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요즘 우리 헌책방업계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현장에서 망연자실해 있다가 문득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가 떠올랐다. 좋은 자료가 가득한 그의 집무실이라면 능히 소개할 만한 책들 만날 수 있으리라 싶었다.

내가 처한 사정 얘기를 들은 그 친구는 여의치 못 한 자신의 상황에도 일단 오란다.

감사한 마음으로 가서 책을 고르는데 그 친구가 ‘저 책이 딱 이네’하며 가져가란다. 몇 년 전에 하나밖에 없는 거라 나눠주지 못 해 미안하다고 했던 바로 그 책이었다. 이 어찌 ‘불감청고소원’이 아니겠는가. 아마 그 때 받았으면 벌써 소개하고도 남았을 책이니 염치 불고하고 들고 와 이 글을 쓴다.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도설 중 동북각루(방화수류정) 부분.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도설 중 동북각루(방화수류정) 부분.

바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2016)다.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의 축성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그 자체도 2007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우리의 자랑스러운 기록유산이다.

이 기록물이 있어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훼손된 화성 성곽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복원물인데도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미 1970년대에 첫 완역본이 나왔지만 완공 220주년을 기념해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이왕의 국역본을 교정 보완하고 논고를 추가해 역주와 원전을 한 세트로 발행한 ‘결정판’이다.

조선 정조시대에 예산이 86만냥이나 투입된 대공사의 비용이 ‘모두 왕실의 사재에서 나온 것’이고 ‘인부는 모두 품삯을’ 줬다(華城紀蹟碑)는 기록을 보면 이게 조선시대였던가 싶기도 하고 공사에 들어간 물품의 수량과 단가, 장인들에게 지급한 급료나 사는 곳까지 모두 기록된 걸 보고 있노라면 과연 ‘기록의 나라’ 조선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양 과학 기술을 응용한 근대적인 축성기술이 동원된 ‘한국 성곽의 꽃’이라는 헌사나 어느 문에 못 몇 개가 들어갔는지조차 알 수 있는 정확한 기록도 좋지만 혹여 ‘비 오고 바람 불거나 몹시 더워서 일하지 못 했’던 공치는 날의 밥값과 ‘앓거나 다친 자가 병이 나을 때까지’의 치료비까지(實入二) 알뜰하게 셈을 치른 그 따스함에 더 눈길이 간다.

그 경황 중에도 올해가 수원(화성) ‘유수부(留守府) 승격 230주년’이자 ‘특례시(特例市) 승격 1주년’이라고 꼭 홍보해 달라고 당부했던 친구가 내년이면 퇴임한다. 이런 ‘정부미’ 친구를 어디서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동안 애썼네 친구!

수원화성 동북각루(방화수류정) 전경.
수원화성 동북각루(방화수류정) 전경.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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