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수행한 ‘대통령 외교 싱크탱크’
남북 정상회담 수행한 ‘대통령 외교 싱크탱크’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6.05.2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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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문정인 연세대 교수…유수 언론 자문 얻는 국제 정세분석 권위자

정치적 흐름을 살피고 분석하는 일을 흔히 정세분석이라 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국가권력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들을 살펴야 하는 정세분석은 외교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근간이고, 국가(정부)는 끊임없이 이를 바탕으로 입장을 취한다. 한반도 외교에 굵직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국내 유수의 언론들이 찾는 문정인 교수를 지난 16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연세대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그는 여전히 책과 씨름하고 학생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얼마전 문정인 교수 부부가 화제가 됐다. 그의 선친이 감귤농사를 짓던 제주시 영평동 중선농원을 ‘갤러리2’로 변신시키면서 주목을 받은 것. 더구나 좀처럼 만나기 힘든 김홍주 작가의 ‘조각과 조각’전이 8월까지 이어져 집중 주목을 받았다.

제주 정착 첫 이벤트가 아니냐는 질문에 문 교수는 “일단 정치외교학과 교수생활을 마무리하고 9월부터는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로 일하게 됐는데,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지낼 것 같다. 미술관은 아내 소관이라서…”라며 얼버무리면서도 청신재(晴新齋)에서 집필 작업에 집중할 거라고 했다.

청신재는 중선농원의 예술‧인문도서관이다. 큰창고는 비영리전시장 갤러리2, 작은창고는 카페, 거주공간인 게스트하우스는 태려장(太麗莊)이란 이름을 붙여놓았다. 대학에서 패션미학을 가르쳤던 아내 김재옥씨와 오래전부터 품었던 전시관과 도서관을 제대로 조합한 듯 했다.

현역에서 한발 물러난 후의 계획을 묻자 문 교수는 “매년 1권씩, 10년간 10권의 책을 쓰려고 한다”며 “얼개는 잡아뒀다”고 했다. 이미 내년 미국에서 영문판 도서 ‘한국방위산업의 정치경제’가 출판 예정에 있고 미‧중의 대립구도,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정세에서 한국이 어떤 전략을 펴는 것이 가장 좋은지를 분석한 ‘불확실성 시대와 한반도의 전략전 선택’도 국내 출판을 준비 중이다.

자연스레 이야기가 미국의 대선과 한중, 남북관계 등 복잡한 국제적 역학관계로 흘렀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구상했던 동북아 질서 재편, 미국과 러시아, 중국 외에도 북한과 몽고 등이 함께하는 다자 간 안보협력 체제 구축 필요성 등 ‘할 말 많은 현재의 외교안보 상황’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주요국 총리와 외교장관들이 포진해 있는 아시아태평양 비핵화를 위한 리더십 네트워크(APLN)의 목표인 핵없는 동북아시아를 위한 구상 등에 대한 설명도 했다. APLN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문 교수는 25~27일 열리는 제11회 제주포럼에서 ‘핵안보와 북핵’을 주요 의제로 다룬다. 몇 년전 방한했던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과의 대화 한 토막을 들려줬다.

“‘만약 2000년 미 대선에서 조지 W. 부시가 아니라 알(앨) 고어가 당선됐다면 어떻게 됐겠느냐’고 했더니, 올브라이트가 ‘지금 같은 북한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미사일이 큰 문제였기 때문에 미사일 문제가 해결됐다면 핵 문제는 대두되지 않았을 것이다. 북에서 중국 같은 대변화가 있지 않았겠느냐’라고 했는데, 동의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2000년, 2007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유일하게 참가한 학자였던 문 교수에게 기억에 남는 역사적 사건을 묻자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던 1991년과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았다.

“1차 정상회담이 끝나고 DJ가 성남비행장에서 ‘이제 평화는 왔습니다’라고 표현했는데, ‘아, 이제 평화가 오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올브라이트의 말처럼 만약 앨 고어가 당선됐더라면 남북관계는 분명 엄청난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며 역사적 실기에 대해 “많이 아깝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왜, 어쩌다’ 정치외교학 분야를 선택했는지 궁금해졌다. ‘그런 걸 왜 묻냐’며 너털웃음을 짓던 문 교수가 고교시절을 얘기하며 웃는다.

“고등학교 때 씨름과 유도, 투포환 선수였는데, 2·3학년 때 내리 한라문화제 문학백일장에서 장원을 하게 됐다. 그걸 계기로 향원이라는 문학서클과 인연을 맺었다.”

향원은 지금 장년에 접어든 김동훈, 장일홍, 문무병 선생 등이 10대 청춘시절인 1967년 만든 고교 문학 동아리다. 문 교수가 그때 함께 했던 선후배들의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현재 제주에서 개업의로 일하고 있는 고금례 박사와 강요배 화백, 번역가로 이름난 김석희 작가, 고원정 소설가 등이다. “군대 가서 정보 부서에 배치 받아 해외 자료를 분석하고 번역하는 일을 하게 됐다. 자연스레 국제관계에 관심을 가졌는데 장학금 준다니까 미국 유학 갔고…. 인생이란 게 계획처럼 정해진 게 아닌 것 같다.”

제주 정착 후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자 여러 생각들을 꺼내놓았다. “지금 과수원 도서관에 내 책들을 다 모아서 인문사회도서관을 제대로 만들고싶다. 제주대학교에서 5분밖에 안걸린다. 학생들이 편하게 이용하고, 좋은 인적 네트워크를 연결해 주고 싶다. 어떤 분이 총장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제주대를 세계 100대 대학으로 만드는 데 공헌도 하고 싶다.”

제주평화의섬 구상과 선포, 제주평화연구원 기본 구상 등에 역할해온 것을 확장하는 역할에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제주 미래에 대해서도 그는 “제주 사람들은 ‘주인이어야 한다’는 프라이드가 매우 강하다. 이대로 가면 외지인 숫자가 50%를 넘어설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가 수로 결정되는데, 외지인들이 제주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제주국제자유도시에 대해서도 그는 “내생적 발전과 외생적 발전, 내지인과 외지인의 문제, 외국인이 자신의 사유재산권을 주장할 수도 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는 항구적 과제이고, 결국 합의를 통해 중간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게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짚어냈다.

 

▶문정인 교수는…1951년 제주에서 태어나 오현중·고등학교,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했다. 현재 연세대 정치외교학교 교수이며 듀크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소 겸임교수와 미 캘리포니아대 샌디에고분교의 크라우스 석좌연구원이기도 하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의 교수요원으로 6년간 초빙된 바 있으며 영문계간지 ‘Global Asia’의 편집인이며 10여 개의 국제저명 학술지(SSCI 등재)의 편집위원으로도 있다. 참여정부 시절 동북아시대위원장, 국제안보대사 등을 역임했다. ‘중국의 내일을 묻다’(2010) 등 다수의 국‧영문 저서와 논문이 있다. 국제외교안보분야에서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로 ‘국제적 마당발’로 불린다.

서울=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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