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아버지..." 75년만 상봉한 4.3희생자 유족들 서러운 눈물만
"꿈에 그리던 아버지..." 75년만 상봉한 4.3희생자 유족들 서러운 눈물만
  • 이창준 기자
  • 승인 2023.02.28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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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희생자 김칠규.강창근.김두옥씨 유해 신원확인 보고회 개최
수십 년만 가족 만난 유족들 오열..."어떤 말도 안 나오네요"
28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교육센터와 유해봉안관에서 열린 '4.3희생자 유해 신원확인 보고회' 

"아버지 일주일 안에 돌아온다고 했는데...집에 가 있으라고 일주일 있으면 오겠다고 했는데 이제 왔어..."

제주4.3 당시 누명을 쓰고 억울한 죽임을 당한 김칠규씨(당시 34세)의 딸 김정순씨(80)는 75년만에 가족의 유해를 확인하고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또 다른 4.3희생자 강창근씨(당시 20세)의 딸 강술생씨(77)와 김두옥씨(당시 26세)의 조카 김용헌씨도 수십 년간 감내해 온 아픔과 그리움에 가족의 유해를 그저 하염없이 어루만질 뿐이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고희범)은 28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교육센터와 유해봉안관에서 '4.3희생자 유해 신원확인 보고회'를 개최했다.

김칠규씨는 이호리에서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다 1948년 12월 30일 집을 나간 후 토벌대에 체포됐고 행방불명됐다. 그의 딸 김정순씨는 이날 보고회에서 "아버지가 일주일 있으면 오겠다고 했는데 이제 왔다. 너무 서러워서 말이 안나온다"며 말끝을 흐렸다.

강창근씨는 1948년 8월경 시내로 나간 후 소식이 두절됐다. 주정공장에 잡혀가 경찰서로 이송됐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의 딸 강술생씨는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을 줄 생각도 못 했다. 영원히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채혈 광고를 봐도 와닿지 않아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꿈에 그리던 아버지가 돌아왔다.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두옥씨는 1948년 11월 마을이 소개될 때 야산에서 숨어지냈다. 가족들은 희생되고 화순리에 내려와 살던 중 토벌대에 다시 끌려갔다. 총살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으나 시신은 찾지 못했다. 조카 김용헌씨는 "목이 메이는데 제일 먼저 고인이 되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엄청 좋아하셨을 것이다. 많은 희생자 유족들이 채혈에 동참해 한 분이라도 더 가정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28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교육센터와 유해봉안관에서 열린 '4.3희생자 유해 신원확인 보고회'
28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교육센터와 유해봉안관에서 열린 '4.3희생자 유해 신원확인 보고회'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75년 세월이 흘러 차디한 얼음 속에 갇혔던 세분의 영령을 가족들이 모실 수 있게 됐다. 원통함과 억울함을 벗으시고 영면하기를 기원한다"며 "신원 확인이 안된 270명의 이름을 찾아드리고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번에 밝혀진 희생자들의 신원은 2007∼2009년 제주국제공항 인근에서 발굴된 유해의 유전자와 지난해 4·3희생자 유족 279명의 채혈분을 대조한 유전자 감식 결과로 확인됐다. 2명은 군법회의 희생자, 1명은 행방불명 희생자다. 이로써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제주공항 등에서 발굴된 제주4·3 희생자 유해 411구 중 141구의 신원이 확인됐다.

이창준 기자  luckycjl@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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