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맞추고 상대 고통 느낄 때 나의 마음 열린다”
“눈 맞추고 상대 고통 느낄 때 나의 마음 열린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05.2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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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숙 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숙명여대.가천대 외래교수

40대 중반인 침착씨와 정열씨는 각자 종사 하고 있는 분야의 전문가이다. 대학을 마치고 외국에 가서 다시 또 학위를 따온 후 직장을 다니거나 자신이 공부하는 학과에서 한 번도 성적이 월등하여 주는 장학금을 놓쳐 본 적이 없을 만큼 자신이 들이는 노력도 한껏 집중해서 들일 줄 아는 에너지가 있는 분들이다. 침착씨의 선배 소개로 두 사람은 만났다.
침착씨는 외국 유학 생활을 하고 소위 말하는 경쟁이 치열한 직장에 취직한 터라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 또한 어려서부터 목소리가 큰 두 부모님 사이에서 자주 대답을 강요당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항상 무슨 대답을 할 때면 조심조심 해야 하고 특히 정답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머리를 떠나지 않아 될 수 있으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열씨는 항상 시원시원하게 이야기를 해서 그것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정열씨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늘 술을 마셨고 집에 돌아오셨을 땐 엄마에게 쉴 새 없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너 때문에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내 인생을 보상해라”라는 말을 수시로 하였고 어머니가 적절한 반응을 하지 않으면 밥상을 엎고 가구들을 쓰러트렸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원하는 대답은 없었을 것 같다며 어머니가 무슨 대답을 했어도 아버지는 꼬투리를 잡고 화를 내셨을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정열씨는 자주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그럴 때면 엄마가 정열씨를 데리고 나가 한참을 밖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고 했다. 그리곤 아버지가 지쳐 쓰러져 잠이 들 때 즈음, 어머니는 정열씨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울분이 한바탕 휩쓸고 간 집안을 하나씩 정리하였는데 그때의 엄마 모습을 보니 입을 하도 꽉 다물어서 감히 말을 시킬 수가 없었다고 했다. 무서웠다고 했다.
남자들을 만나도 한 번도 즐겁다거나 저 사람이 마음에 든다거나 하는 생각을 못했는데 침착씨를 만났을 때 말이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는 모습을 보고 금세 마음이 갔다고 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얼마 안 돼 결혼을 했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결혼 생활은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의 호감이 이젠 약점이 되어 버렸다.
자신만을 이해해 줄 것만 같았던 상대방이 차츰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가 되어 버려, 둘은 별거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아이를 서로 키우겠다고 주장하여 유치원에 있는 아이를 한쪽이 일방적으로 데리고 가서 보여주지 않았고  아이는 난데없이 양육 환경이 자주 바뀌는 경험을 하였다. 이혼 소송이 시작되었고 한쪽도 반소 제기를 하여 끊임없이 상대를 비난하며 아이에게 부적절한 양육자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마치 나의 살처럼 세상에 그렇게도 친밀했던 사람이 이제 세상에 비실재하는 타인이 되어버리면 이제는 그들이 얼마나 아픈지 보지 못하게 된다. 이제 나에게 그 사람은 느낌을 갖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무시하고 마음의 가책 없이 고통을 가할 수 있다.
그런 그들이 법원에서 안내해준 가사 상담을 받으면서 조금씩 다시 서로에게 실재로 느낌을 가지고 존재하는 사람들이 되어갔다.
롱펠로우 시인은 “만약 우리가 적의 숨겨진 역사를 읽을 수만 있다면 각자의 슬프고 고통스러운 인생에 공감해서 모든 적대감을 무장해제 시킬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썼다.
둘은 문득 상대방도 나와 같이 고통스럽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제 그렇다면 ‘우리아이는?’ 이란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에게는 부족함이 있는 남편이나 아내일 수 있지만 아이에게는 이 세상에 가장 소중한 아빠와 엄마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아이와 상대방의 만남에 민감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안 좋은 점을 아이가 배우게 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임을 충분히 이해 받고 나니 아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지혜로워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상대방의 안 좋은 면을 답습하기 보다는 친가, 외가댁을 오가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 올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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