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서귀포 시 등행
구 서귀포 시 등행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2.0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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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칠 작곡가·음악평론가·논설위원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오전 8시30분. 언제나 모이는 장소로 단원들이 모였다. 내가 지휘를 하고 있는 제주여성합창단에서는 매월 첫째주 토요일에 오름이나 등행을 하고 있다.

오늘의 등행 장소는 구 서귀포 시, 내가 어렸을 적에 살았던 곳으로 익히 그 근처의 장소들을 잘 알고 있었다. 맨 처음은 새연교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범섬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묵호의 난’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이 몽고군과 전투를 해 범섬까지 쫓아가서 일망타진한 사건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이어 새섬으로 진입하려는데 진입로가 막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돌아서서 천지연 폭포로 향했다. 천지연 폭포 진입로에 있는 ‘김광협 시비’에 도착을 했다. 故(고) 김광협 시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고 시 ‘유자꽃 피는 마을’을 낭송을 한다. 그의 마지막 직업인 음악지인 유명 월간지 ‘객석’ 사장으로 재직한 내용까지 설명을 한다. 다음에는 천지연 폭포 진입로를 걸으면서 오솔길을 걸어 나왔다.

천지연 광장에서 필자가 제주도 예총 회장일 때 탐라문화제 개막식을 했었다. 제49회 탐라문화제가 처음으로 서귀포에서 개막식했는데, 1회서부터 모두 제주시에서만 개막식을 하고 단 한 번도 서귀포에서는 개최된 적이 없었다. 서귀포 출신으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이제는 솔동산 아래의 서귀진성 터로 향한다. 서귀진성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설치가 됐는데 이 진을 둘러서 성곽이 축조가 됐다고 한다. 해방 후에는 서귀여중고의 장소로 사용했었다. 현재 학교는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한 상태이고 그 장소에는 서귀진성을 복구하는 중이다. 그리고 1980년대 시행을 한 정방소에서 부터 서귀진성 까지 약 1.3㎞의 수로(水路)가 사라저버린 역사에 대한 얘기를 한다.

다음의 장소는 솔동산 체험을 한다. 이곳은 과거 서귀포의 문학과 예술 그리고 젊은이들이 꿈과 낭만을 얘기하던 장소이다. 1960년대의 서귀포 출신들은 이곳 솔동산을 사랑하고 이 거리를 걷고 또 걸었었다. 다음으로 이중섭 미술관으로 향했다. 근처에 있는 이중섭 가족이 머물렀던 초가집에 들려 미술관을 향해서 전시 중인 미술작품들을 관람을 한다.

모두들 진지하게 미술 작품들을 감상을 하고 구 관광극장으로 모인다. 지금은 천정도 없이 그곳에서 간단한 음악회, 시 낭송회 등을 펼치는 장소이다. 내가 중학교 3학년 시절(1965년) 가을. 한라문화제 서귀포 예술제의 공연에서 클라리넷 독주를 했던 장소이다. 뿐만 아니라 애국가 작곡가이신 안익태 선생께서 1963년 여름 서귀포 시민들을 위해 음악회를 했고라 애국가를 지도하기도 한 장소이다. 또 이 극장이 특이한 것은 벽을 쌓은 돌들이 모두 제주의 현무암으로 쌓았는데 현무암이 음향 반사가 잘 되는 돌이어서 서귀포 관광극장이 공명이 잘 되는 장소라는 것이다.

대충 설명을 마치고 이제는 소암 현중화 전시관을 향했다. 현중화 선생님은 내가 중학교 시절 한문과 서예를 담당 하셨던 은사님이셨다. 내가 살았던 한 동네에 선생님도 살아서 자주 만나곤 했다.

이젠 근처에 있는 서복 전시관 차례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내가 이 근처에 살았을 때에는 고구마 전분공장이었다. 그 후에 엿 공장이기도 하였다. 정방폭포를 갈까하다가 비도 내리고 해서 다음 코스를 택했다.

이제는 마지막 코스인 서귀포 허니문 하우스이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호텔로 들어섰다. 허니문 하우스에 얽힌 몇 가지 사연들을 설명을 하고 밖으로 나와 오늘 구 서귀포시 등행을 끝냈다. 어릴 적 추억이 배어있는 구 서귀포 시가지를 단원들과 걸으면서 오랜만에 향수에 젖는 시간이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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