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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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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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하얀 눈이 내린다. 시베리아 한파로 귀향길의 몇만 명을 하늘길 뱃길조차 막았다. 차곡차곡 쌓인 눈은 동화의 세계가 되었다. 어릴 때, 밤새 눈이 내리는 날이면 날이 밝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마당에 쌓인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었다. 손이시려 털장갑 낀 손으로 눈에 묻힌 주먹 크기의 돌을 골라 눈을 탱탱하게 붙이면 동생과 공처럼 굴렸다. 몸체를 만들어 앉힌 후 다시 하나를 굴린다. 무너지지 않게 둘이서 살그머니 올려놓으면 성공이다. 

마당 철봉 밑에 앉혀둔 눈덩이에 나뭇가지를 잘라 코와 입을 만들었다. 조그만 숯 두 개를 아궁이에서 골라 눈썹으로 붙이면 한 아이가 앉아 있다. 방에는 식구도 많은데 마당에 식구까지 더하면 대가족이 되어 강아지조차 뛰어다녔다. 우영 밭에 소복이 쌓인 눈 위를 강아지는 발자국을 남겼다. 동화처럼 그리운 옛 풍경이다.

제주에서는 꿩 수렵은 겨울에만 허가된다. 지인의 얘기다. 주중의 낮에는 직업상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주말에는 유일하게 사냥을 즐겼다. 눈밭을 뛰어다니던 사냥개는 꿩의 둥지도 잘 알아 짖어댔고 총소리를 쫓아 목표물 수거도 잘했다. 외국산 사냥개는 주인을 순종하고 몇 년을 잘 따랐다. 어느 날 사냥개는 가출해버렸다. 애지중지 여기던 사냥개를 찾으려고 주중의 일도 타인에게 맡기고 백방으로 수소문해도 난감했다. 중산간 마을에서 기별이 왔다. 어느 양계장에서 백여 두를 헤집고 다닌다는 사냥개가 있으니 확인하라 하였다.
 
가족을 찾는 느낌으로 찾아갔더니 주인을 몰라보는 늑대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달래려고 자세를 낮추고 말을 걸어도 막무가내로 짖었다. 꿩사냥을 즐겼던 사냥개여서 양계장의 피해액을 보상할 각오까지 했는데 지인에게 달려들 태세였다. 기별해 준 사람은 개 주인이 아닌 것 같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배상금도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에게 물듯 악마로 변해 버린 사냥개의 본능이었다. 찾아 헤맸던 기간에 사냥개는 시베리아 어느 들판을 헤매던 야생의 늑대로 변했다. 배신감에 사냥 관련 물품을 모두 처분해버렸다는 후일담이다.

태어나면서 이미 선천적으로 야생이었던 유전자는 인간의 힘으로 조련해도 소용없었을까. 극히 일부분이지만, 사랑의 온도를 느끼게 하였다. 눈이 와야 봄은 온다고 알리고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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