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4·3 재심 법정서 눈물지은 유족
"저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4·3 재심 법정서 눈물지은 유족
  • 현대성 기자
  • 승인 2023.01.3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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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제주일보 자료사진.
뉴제주일보 자료사진.

“아버지가 저 때문에 죄인이 됐습니다.”

31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4·3 일반재판 피해자 9명의 재심 재판에 참여한 고(故) 임효봉씨의 아들 임성주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에 눈물을 보였다.

임씨는 “아버지가 주말에 저를 보러 고향에 오셨다가 제주시에서 정보를 갖고 온 사람이라는 무고를 당해 잡혀 갔다”며 “제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저를 보러 오지도 않았을 거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를 보기에 죄송하다”고 말했다. 

제주지방법원 제4-1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이날 고(故) 임효봉씨 등 희생자 9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일반재판 피해자 재심 이후 진행된 군사재판 수형인에 대한 직권재심에서도 기구한 사연은 이어졌다.

이날 직권재심 대상에 포함된 김달삼씨는 1948년 12월 28일 군법회의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목포형무소에 수감된 후 행방불명됐다.

김씨는 4·3 당시 무장대 총책이었던 김달삼(본명 이승진)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더욱 고초를 겪었다.

김씨의 아들 김순두씨는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숱하게 조사받았다. 막상 조사해 보면 생년월일이 달라 풀려나기 일쑤였다”며 “나중에는 조천국민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폭도들과 연관됐다고 취급하겠다고 해 아버지도 나갔다. 수형된 후 보낸 엽서를 보고 어머니가 눈물지을 때 어린 나이에 이유도 모르고 따라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김순두씨는 또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이후 어머니는 자식들의 앞날을 위해 아버지의 사망 신고를 했다. 어머니가 사망 신고를 했기 때문에 신원조회를 통과해 큰형도 군 특수부대 생활을 할 수 있었다”며 “제사 때마다 통곡하던 어머니의 심정을 다 커서야 이해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부는 김씨를 비롯, 4·3 군사재판 희생자 60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현대성 기자  canno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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