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부스·БҮС)를 의미하는 오롬서 굴피나무 숲과 조우
띠(부스·БҮС)를 의미하는 오롬서 굴피나무 숲과 조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1.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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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부소오롬

오롬끼고 흐르는 천미천 하얗게 반짝거려
저물녘 부소오롬 오른쪽으로는 임도이고 왼쪽으로는 어린 말을 가두던 곳이다.
저물녘 부소오롬 오른쪽으로는 임도이고 왼쪽으로는 어린 말을 가두던 곳이다.

제주시에서 표선까지 이르는 번영로는 거문오롬 사거리를 지나며 북쪽의 거문오롬과 남쪽의 부대~부소오롬 자락을 가르며 동으로 향한다. 거문오롬 남쪽의 두 개 오롬 중에 도로에 접해 ᄀᆞᆯ채(삼태기) 같은 굼부리가 보이는데 이게 부대오롬이다. 부소오롬은 거기서 100m를 조금 더 가면 좁지 않은 비포장의 주차장이 있는데 바로 부소오롬 주차장이다.

삼나무 숲 좌측으로는 어두컴컴한 구렁을 이루고 반대편으로는 부대오롬에서 관리하는 승마용 말들이 한겨울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길지 않은 삼나무 숲을 지나면 부소오롬 임도를 만난다. 우측으로 조금 더 가면 부소오롬으로 올라가는 탐방로가 보인다. 이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면 탐방로 표지판이 있는데 1코스, 2코스. 3코스가 있다.

탐방로를 따라 오르는 부소오롬 등성이는 다소 급한 편이지만 그 옛날 가시덤불을 헤치며 길 없는 곳을 오르던 것을 생각하면 호사하는 것이다. 부소오롬을 오르는 오롬 등성이에는 소나무가 대부분인데 40여 년 좌우로 보인다. 그런데 꽤 많은 소나무가 솔잎혹파리 충해로 이미 베어지고 또 베어지려고 명찰을 달고 있으니 슬픈 일이다.

소나무 아래로는 1m 좌우의 늘 푸른 잎 참식나무들이 자리를 잡았다. 오롬 등성이를 돌아 나오는 중에 아쉬움은 다양하지 못 한 생태계의 단순함과 정상에 올라도 나무들에 가리어 주위를 전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롬을 내려오며 다른 길에서 만난 놀라움은 전혀 생각지 못 했던 특별함이다. 그것은 제주에서는 보기 어려운 굴피나무 숲을 만난 것이다.

굴피나무는 한때 한국 땅에서 최상위에 있었던 나무인데 나무들도 생존경쟁이 녹록지 않다고 한다.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잘 알지 못하는 게 굴피나무라고 한다. 필자 역시 많이 보아오던 터이지만 굴피나무가 제주도에 이처럼 군락이 있다는 것이 놀라워 사전에서 찾아보고 교래리에 사는 숲해설사인 김정자씨에게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굴피나무는 키 3m, 지름 10cm 정도인데 부소오롬은 더 크고 굵은 것 같다. 굴피나무는 산기슭이나 골짜기에서 자라며 경기도 이남에 널리 분포된다. 관동지역과 울릉도 사람들은 초기 정착 시에 지붕을 덮는 데 사용했는데 경상도 동해안 지역은 청동기시대에 시신을 싸서 장례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굴피나무의 이용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부소오롬 중턱에 아직도 가지 끝에 달라붙은 굴피나무 열매껍질.
부소오롬 중턱에 아직도 가지 끝에 달라붙은 굴피나무 열매껍질.

부소오롬의 명칭에 대한 유래는 아직껏 알려진 바 없다. 한자로는 부소악(夫小岳·扶小岳)·사모악(紗帽岳)·신두악(新斗岳) 등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조선시대 와서 제주 사람들이 사용하던 명칭을 한자를 빌어서 음차해 기록한 것이니 정확한 내력을 캐내기 어렵다.

필자가 몽골어 사전에서 확인한 결과 ‘부스(БҮС)’라는 발음을 찾았다. 이는 ‘띠’를 말하며 외교어로는 ‘수교’, 산의 ‘산맥’, 정치-경제적 ‘벨트’를 말한다. 부소오롬은 동북에서 남서로 체오롬·거친오롬·거문오롬·부대오롬·부소오롬·ᄀᆞᆯ체오롬·민오롬·방에오롬이 열 지어 띠를 이룬다. 또한, 천문학은 ‘스물여덟 개 별 중 하나’라 하나 필자는 천문학에 문외한이라 언급할 수 없다.

제주에서는 ‘새ᄆᆞᆯ메’라 했는데 이는 ①어린 말들을 먹이던 곳 ②어린 말들을 훈련하던(길들이던) 곳으로 전해지나 필자는 ③소나 말을 에워두는 가두리로 본다. 입구에서 오롬을 마주 보는 곳인 삼거리 오른쪽(북)으로는 임도가 있고 왼쪽(남)에서 입구만 막으면 동쪽으로는 잣성이 있어 천연 가두리다. 탐라국 때는 하·중·상 잣성 중에 여기는 상잣성 경계로 천연 가두리가 된다.

오롬 둘레는 돌아가며 잣성이 둘렸고 남동쪽으로는 깊은 골짜기를 이룬다. 골짜기는 큰 물에 깎여 하얗게 번짝거린다. 이 골짜기가 바로 한라산 가까운 흙붉은오롬에서 발원, 동쪽으로 흐르는 천미천이다. 천미천은 조천읍→부소오롬을 끼고 흐르다가 남동으로 꺾이어 구좌읍→선족이오롬, 표선면→개오롬 앞을 거쳐 성산읍→신풍리와 표선면→하천리를 나누며 바다로 흐른다.

동네에서는 이 하천을 ‘진숫내’라고 부른다. 이 하천은 소를 모는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곳이다. 한라산에서 급히 내리는 비로 큰 물이 터져서 홍수를 만들면 물가에서 소를 먹이다가 떠내려가서 죽은 사람이 있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듣던 곳이 바로 이 천미천이다.

쭉쭉 하늘로 뻗은 삼나무 숲을 지나는데 한 쌍의 신혼부부가 혼사 촬영을 한다. 좀처럼 찾지 않는 한적한 겨울 숲속, 젊은 사랑이 푸르다. 귀갓길에 굉음에 놀라 삼나무숲으로 피했더니 한 무리의 4륜 산악모터사이클이 불빛을 번쩍거리며 지나간다. 오롬을 내려올 때 보았던 노루와 딱따구리는 얼마나 놀랄까? 짐승들이 새봄에 나눌 사랑이 심히 걱정스럽다.

잔설 위로 닭털처럼 날리는 사위찔빵 꽃씨와 굴피나무 숲 위의 겨울 속 푸른하늘.
잔설 위로 닭털처럼 날리는 사위찔빵 꽃씨와 굴피나무 숲 위의 겨울 속 푸른하늘.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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