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의 거리
흔적의 거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1.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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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용 수필가

바다와 멀지 않은 곳 때문일까. 해무 빛 하늘을 불러 모으던 오후, 친구 넷이서 칠성통 거리를 걷는다. 세상의 모든 길이 누군가의 기억에 머물렀던 흔적이라면, 지금 이 길도 누군가의 기억으로 남았을 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거리를 오갔을까.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버렸지만, 서울의 명동거리처럼 바글바글했던 사람들도, 그 많던 극장과 다방, 레스토랑, 음식점, 양복점 등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계용묵 소설가와 박목월 시인 등 수많은 피난길에 머물렀던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가 되어 주었던 ‘동백다방’이 자리했던 곳엔 보일 듯 말 듯, 칠 벗겨진 표상 비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제주문화원 재직 시, 양중해 원장이 들려줬던 이야기를 회고해 보면 ‘동백다방’은 제주문학의 산실이었다. 

계용묵을 중심으로 박목월, 최현식 등 1951년부터 한국전쟁 피난 문인들이 장기 체류했으니, 뜨거운 문학 열정을 갖고 있던 제주 젊은이들은 실로 행복이었고 감격이었고, 충격이었다. 따라서 제주문학의 단초가 되었던 것이 이때부터다. 지나온 삶의 여정이 각자 다르듯 나에게도 칠성통은 잊지 못할 추억이 많은 곳이다. 70년대와 80년대까지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한 획을 이야기하라면 나는 자신 있게 음악다방이라고 말하고 싶다. 제주의 음악다방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본격 자리매김한 시기는 70년대 초다. 관덕로의 ‘심지다방’, 중앙로의 ‘중앙다방’, 광양의 ‘명륜다방’ 등이 이미 앞선 걸음으로 시대의 문화를 예견하며 조응하고 있었고, 그 뒤를 이어 , ‘호수다방’, ‘도심다방’, ‘밀다방’ 등의 제2의 음악다방과 ‘꽃사슴’, ‘숲속의 빈터’ 같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칠성통에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했으니 그렇게 생겨난 음악감상실은 8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맞았다. 그때만 해도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가정에서 전축은 물론 라디오도 제대로 없었을 때라 젊은이들이 특별히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접할 다양한 혜택이 없었기에 음악감상실의 인기는 대단했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의 유신 시대 계엄령으로 숨 막히는 회색빛 나날을 보내야만 했던 그 시절, 긴 꿈이었을까 나는 칠성통 어느 음악실 스튜디오에 앉아 아득한 세월이 거친 바람 속을 참으로 오래도 걸었으니 칠성통 거리의 추억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아마 그 시대를 공유했던 세대라면 담배 연기 자욱한 구석 자리에 온종일 죽치고 앉아 듣던, 당신의 그때 그 노래를 결코 잊을 수 없으리라….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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