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늙으리라
늙으면 늙으리라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1.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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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수필가

노인은 자동차와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동차는 매월 무제한으로 생산된다. 운전면허도 수없이 발부되지만, 그 자동차를 놓아둘 장소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들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은 하지 않아도, 노인을 자동차와 같이 ‘놓아둘 장소에 어려움을 겪는 존재’라고 하는 것 같다. 주차장이 없는 자동차. 있을 장소가 없는 노인. 어이없게도 이것이 앞으로 나 같은 노인이 맞이할 한국의 현실이다.

의학의 발전으로 노인의 인구도 매년 늘어난다. 그러면서 사회는 심드렁하게 ‘평안하고 즐겁게 노후를 보내시라’고 한다.

장수하는 게 행복인가 하는 걸 몇 번이고 생각해 보지만 대답은 역시, 아닌 것 같다.

노인은 건강이 쇠해지는 것뿐만이 아니다. 친구 선배 형제 반려를 잃고 그 추억을 가슴에 안고 사니 슬프다. 노인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사회는 알 리가 없다. 알아주지도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의 성선설과 성악설이 함께 존재한다는 답을 얻었다. 선한 부분이 보이는 것도 악한 부분이 보이는 것도 각자의 성격과 환경과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

남들은 이미 알았을 이치를 이제 와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니 나이 드는 게 좋다는 뜻이다.

요즘엔 잊어버리고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가 있다. TV에서 상영되는 영화도 심각하게 다시 볼 때가 있다. 문제는 시간과 정성을 드려 읽는 책도, 보는 영화도 거의 끝 무렵에야 알게 된다. 전에 봤다는 걸.

그 얘길 했더니 옆에 있던 동생이 치매 징조라고 킬킬거리며 겁을 준다. 기억력이 희미해져서인지, 책도 영화도 처음 대하는 신선함이 있어서 나쁘지 않다. 예전처럼 시간이 없다는 말도 나오질 않는다.

천천히 산책하고 저녁노을의 아름다움도 마음껏 감상한다. 골목 어귀에 있는 찻집에 들어가 실컷 시간을 누리며 차를 마신다.

아쉬운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말처럼 ‘늙으면 늙으리라’는 자세로 산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현명해지는 게 아니다. 조심성이 많아질 뿐이라고 헤밍웨이는 말했다.

결국, 인간은 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이 부서지기 쉬운 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노인이라는 나이는 누구에게나 처음이니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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