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원나라 사이 전쟁·외교·제도 한 눈에
고려-원나라 사이 전쟁·외교·제도 한 눈에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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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1972·영인본)

1972년 대만 광문서국 간행본의 영인본
본문 끝 삼별초 중심 탐라조 별도 부기
‘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廣文書局·1972·영인본) 표지.
‘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廣文書局·1972·영인본) 표지.

늘 이런저런 다양한 책들이 수도 없이 들어오는 헌책방이지만 때로는 다른 책들보다 훨씬 더 눈길이 가는 놈들이 있다. 물론 나도 장사꾼이니 아주 희귀하거나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는 책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이 헌책방지기도 사람인지라 경제적인 이익과는 상관없이 그저 애착이 가는 그런 놈일 때도 있다. 그 책을 보기만 해도 그 때 그 시절의 추억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그런 류의 책들 말이다.

게으른 탓에 아직 정리를 안 해서 책방 한 구석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놈들 가운데서 간만에 그런 책이라도 만나면, 어쩌다 하는 정리를 또다시 미뤄두고 예의 그 ‘추억팔이’를 시전하곤 한다. 평소에는 그 책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관심 없다가도 눈 앞에 보이기만 하면 세상에 ‘죽고 못 사는’ 사이였던 것처럼 마냥 애틋해 진다. 오늘은 엊그제 만난 그런 책을 소개해 보련다.

그 책은 바로 벌써 25년 전 당시 늦깎이 학생으로 막 입학한 내가 다니던 한 연구소 도서관에 처음 가서 자료를 찾다가 만났던 ‘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다. 읽다보니 관외 반출 불가인 이 자료에 욕심이 난 아주 소심했던 내가 어설픈 중국어로 어찌어찌 복사해서 소중하게 읽었던 책이다. 당시 읽었던 건 1917년 상해 창성명지대학(倉聖明智大學)에서 간행된 초간본이지만, 우리 책방에 소장한 책은 1972년 대만 광문서국(廣文書局) 간행본의 국내 영인본이다.

'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廣文書局 1972) 서문 부분.
'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廣文書局·1972) 서문 부분.
'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廣文書局·1972) 왕국유(王國維)의 부기(附記) 부분.
'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廣文書局·1972) 왕국유(王國維)의 부기(附記) 부분.

말미에 적혀있는 왕국유(王國維)의 부기(附記)에 따르면 이 책은 청나라 말기의 학자 문정식(文廷式)이 명나라 영락제의 명에 의해 편찬된 중국 최대의 유서(類書, 백과사전) ‘영락대전(永樂大典)’에 수록된 원나라 법률제도에 관한 공문서를 수집해서 편찬한 ‘경세대전(經世大典)’ 정벌류(征伐類) 고려 부분을 옮겨 적고, 일부는 ‘원사(元史)’ 외이전(外夷傳)에 있는 자료로 보충해서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은 명확하게 구분된 명칭은 없지만 본문의 내용을 간단하게 약술한 서문과 고려와 원나라 사이의 전쟁·외교·제도 등을 편년체로 기록한 본문, 그리고 왕국유의 부기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태조부터 성종까지의 한중 관계를 담은 본문 끝에는 세조 쿠빌라이 칸 시기의 일본 정벌과 관련한 삼별초의 난 진압을 중심 내용으로 ‘탐라(耽羅)’조가 별도로 부기되어 주목되는 바이다.

'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廣文書·1972) 탐라(耽羅) 부분.
'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廣文書·1972) 탐라(耽羅) 부분.
'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廣文書局·1972) 판권.
'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廣文書局·1972) 판권.

비록 원나라가 망한 지 수 백년이 지난 청나라 말기에 편찬된 책이지만, 수록된 자료의 상당부분이 지금은 실전(失傳)되고 없는 책에서 초록(抄錄)된 내용으로 다른 자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내용도 상당수 있어서 그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접했을 당시 이 책을 번역·주석하고픈 만용이 내 마음 속에서 살며시 일었었는데, 지금은 다행히도 고려대학교 이진한 교수가 주도한 여원관계사연구팀의 ‘역주(譯註) 원고려기사’(선인, 2008)가 나와 있어 누구나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20여 년 전 내게 ‘원나라 시절 제주도는 우리 땅이었다’며 은근한 돌려까기를 시전했던 어느 한화(漢化, 스스로 몽고족임을 잊은)한 몽고족 연구원에게 나는 ‘소심하게 뭐 그런 쪼그만 땅을 가지고 그러냐. 그 때 그 시절엔 온 중국 땅이 다 너희들 거였는데…’라고 되갚아 줬었다. 그 때 놀란 토끼 눈을 했던 그 연구원이 지금은 어찌 생각할까?

왼쪽부터 '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廣文書局·1972)와 '역주(譯註) 원고려기사'(선인·2008).
왼쪽부터 '원고려기사(元高麗紀事)'(廣文書局·1972)와 '역주(譯註) 원고려기사'(선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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