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삼굴(狡兎三窟)
교토삼굴(狡兎三窟)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1.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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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올해는 계묘년, 검은 토끼의 해다. 토끼에 대한 사자성어 ‘교토삼굴(狡兎三窟)’을 떠올린다. 교활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는 뜻이다. 이 말의 유래는 중국 제나라의 맹상군과 풍훤의 일화에 나오는 말이며, 유사시를 대비하여 여러 방도의 준비가 필요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풍자소설 ‘별주부전’에도 토끼의 영민함을 볼 수 있다. 병의 치료를 위해 토끼의 간이 필요했던 용왕은 별주부(자라)를 지상으로 보내어 토끼의 간을 구해오라고 한다. 별주부의 감언이설에 속아 용궁까지 간 토끼는 자기의 간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고 기지를 발휘하여 간을 두고 왔다는 말로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다. 

필자에게도 다양한 이유로 위기의 순간들이 많았다. 관계에서 상처받은 고통, 선택의 고비, 경제적 어려움, 뜻밖의 일로 정신적 공황이 올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나름의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훌훌 털고 집을 떠나기, 며칠을 도서관에 처박혀 있기, 무작정 걷기, 머리를 쥐어짜듯 생각하기 등이다. 이런 방법들이 지친 나를 토닥토닥 위로하고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그 과정에서 오롯이 나의 의지와 영적 교감을 하게 되고 다시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는다. 움츠러진 어깨가 펴지고 고개 들어 높은 하늘을 볼 수 있게 된다. 모두 내 마음의 동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학교에 근무할 때다. 야외학습장을 만들어 토끼 닭, 오골계 등을 키웠다. 아이들은 토끼를 더 좋아해서 풀을 뜯어다가 토끼들에게 주곤 하였다. 토끼 집은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도 토끼들은 바닥 곳곳에 굴을 파서 그 구멍으로 들락거렸다. 그곳에 몰래 먹이를 숨겼는지는 모르지만, 바닥 곳곳에 뻥 뚫린 구멍을 파서 골치였다. 굴을 파는 것이 토끼의 습성인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요즘도 가끔 사라봉을 가는데, 정상부근에서 토끼를 만날 수 있다. 동그란 눈에 쫑긋한 귀를 세운 새끼 토끼들과 토실토실한 엄마 토끼가 귀엽고 사랑스러워 카메라에 담아왔다. 얼마 전에는 토끼굴도 보았다. 

토끼가 판 그 굴속이 궁금하다. 터키의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 데린쿠유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토끼들에게는 비상시를 대비한 아주 중요한, 꼭 필요한 굴이 아니겠는가.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동굴은 필요하다. 불확실한 미래를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하나의 굴이 아닌 세 개의 굴을 파는 ‘교토삼굴(狡兎三窟)’ 의 지혜도 배울 일이다. 언제 무슨 일로 위기가 올지 모르는 일이기에 말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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