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많이~”와 행복
“복 많이~”와 행복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1.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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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너무 빠르다 하고, 아이는 너무 느리다고 하는 게 세월이다.

아직도 설날이 열흘도 더 넘게 남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새해 덕담(德談)을 하는 건 무슨 심사일까?

지난 한 해가 너무 지긋지긋해서인가.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되선지 새해 모임도 유난히 많아졌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말은 대체어가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새해 인사 덕담이 됐다.

사실 “복 많이~”는 주로 아랫사람에게 하는 덕담이라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인사가 아니라고 하는 데 요즘은 위 아래가 없다.

아무리 AI세상이지만 어딘지 이질적인 시차(時差)가 느껴지는 데도 다들 “새해 복 많이~”다.

새해 덕담은 상대방에게 특화된 인사가 돼야 한다. 이 사람에게도 “복 많이~” 저 사람에게도 “복 많이~” 할 게 아니라는 얘기다.

▲대동야승(大東野乘)에는 성현(成俔)(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가 있는 데 이런 새해 인사 이야기가 실려 있다.

민대생의 나이는 90살이었다. 정월 초하룻날 세배하러 온 조카 중 한 사람이 “숙부님 백살까지 사십시오”라고 했다. 이에 민대생은 “내 나이 90살인데 만일 백살까지 산다고하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어찌 내게 복이 없기가 그러냐”며 화를 냈다. 이를 눈치챈 다른 조카는 “숙부께서는 백살을 사시고 또 백살을 더 사십시오”했다.

민대생은 이것이 정말 축원이라며 좋아했다.

새해 덕담은 상대방에 대한 기원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서로 건강과 성공을 빌어주는 덕담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풍습이다.

새해 덕담은 더욱 그렇다.

▲육당(六堂) 최남선은 언어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하면서, 말 그대로 실현된다고 믿고 하는 말이 바로 덕담이라고 했다.

문자가 아닌 언어에도 영적인 힘이 있다고 믿는 일종의 언어주술적 시각에서 덕담의 연원을 설명한 것이다.

육당은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새해 덕담은 “그렇게 되라”고 축원하는 것이 아니라 “벌써 그렇게 되었으니 고맙다”고 축하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덕담을 할 때는 “무엇무엇을 하기를 바란다”고 하지 않고 “올해에 부자가 되었다지” “올해 승진했다지” 등 과거형으로 말하면 소원이 이뤄질 수 있는 힘이 더 생긴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실로 그럴싸한 어법이긴 한데 요즘 사람들은 이것도 무시하고 현재 미래형이다.

▲새해 SNS에는 복을 빌어주는 이런 저런 덕담이 넘쳐난다.

그런데 복과 행복은 같은 듯 다르다. 핵심 차이는 타인과의 관계에 있다. 전통적인 복의 개념은 이기적·폐쇄적 측면이 강하다. 내가, 내 가족이, 내 집안이 잘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혼자서는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하는 데서 행복은 싹튼다.

또 행복은 내면에서 온다.

우리는 분명 옛날보다 오래 살고있고, 더 풍족해지고, 편리해졌는데도 행복하지는 않다.

들어온 복을 고맙게 생각하기보다 남이 차지한 복이 커보이는 탓이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또 나누는 사람에게 복도 행복도 깃든다.

새해 인사는 “복 많이~”보다 “행복하세요”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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