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바퀴’
‘동네 한바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1.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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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칠 작곡가·음악평론가·논설위원

나는 매일 아침 산책을 한다. 장소는 오름이나 동네를 돌기도 한다. 매일 걷는 장소를 다르게 변화를 주며 걸으려 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같은 장소라 해도 다른 감정과 기분을 느낄 수가 있다. 오늘은 가 본 적이 없는 동네의 속살을 보듯이 다른 방향의 코스로 걸어갔다. 처음으로 만나는 생소한 건물과 도로가 나의 생활에 변화를 줘 생동감을 준다.

매일 만나는 주변의 건물들과 도로는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단조로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매일 변화가 있는 생활을 원하고 있는데 조금씩의 변화가 나를 윤택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집에 머무는 시간에는 독서와 작곡, 편곡, 글을 작성 하는 일 등을 하다가 보면 무언가 어제와 다른 변화가 있는 생활을 하려고 한다.

마침 모 TV 방송사에서 ‘동네 한바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 있어 보는 재미가 심심찮다. 동네의 특성이라든가 어떤 경우는 유명한 핫 플레이스로 각광을 받는 지역도 다반사였다. 이제 그러한 장면을 기억을 하면서 아주 느린 걸음으로 동네를 거닐어 본다. 그러다 괜찮은 장소가 나타나면 한참이나 그곳을 주시하다가 머물고 다양한 감정을 일으키곤 한다.

도심에서 조금은 떨어진 마을, 가을이라 집들마다 노란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감나무들이 흔하게 보인다. 내가 다니는 골목은 도심의 분위기와는 다른 시골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지역이다. 이제 가을걷이가 끝나가는 이 지역도 몇 년 지나면 도심의 발전에 견디다 못 해서 거의가 도시 형태로 탈바꿈 할 것이다. 모든 마을들이 그렇게 변화를 가져 왔다.

어떤 집 울타리에는 노란 밀감이 주렁주렁 달려서 지나가는 행인(行人)의 발길을 멈추게 되는 일이 많다. 같은 도심에 살고 있음에도 이러한 생소하지만 너무나 다른 지역의 감정을 느끼곤 한다. 이렇게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판이하게 다른 곳에 사는 것이 비단 현재만의 것이랴? 인생사 모든 일이 이러한 과정을 모두 거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모아 걷는 나의 발길은 어느 새 느린 속도로 내 시야에 비치는 모든 것들을 내 마음에 담는다. 나는 급하지 않게 때로는 내 마음에 간직하며 살아가는 이 모든 과정을 사랑한다. 이렇게 ‘동네 한바퀴’는 이 곳만이 아니라 내일은 다른 방향으로 돌기를 원한다. ‘동네 한바퀴’를 다니다 보면 오래 전 내가 다녔던 시골길의 동네를 기억해 낸다.

어느 여름 밤.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 거리에는 사람이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우산도 없이 동네를 미친 듯이 걸어갔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암흑, 왠지 내 처지가 슬프고 슬픔이 밀려와 인적이 없는 마을길을 걸어갔다. 눈물을 흘리면서 빗물이 범벅을 이루며 끝없이 걸어 나갔다. 메아리 없는 함성을 내 뿜으면서 앞을 쳐다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거리를 방황하던 청년인 시절.

이렇게 나의 ‘동네 한바퀴’는 어떻게 보면 나의 한평생의 모습이라 할 수가 있다. 오늘은 이러한 동네를 바라보면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무엇에 얽매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다짐을 한다. 나의 인생의 좌우명이다.

‘동네 한바퀴’를 걸어가면서 느끼는 감상(感想)은 다양하다. 오늘의 감상과 내일의 감상이 또 다른 감상일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나의 산책은 운동일 수도, 감상일 수도 또한 추억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시간 자리에서 일어나서 ‘동네 한바퀴’를 걸어가야 한다. 마을 언덕 너머 저편에 있을 예상치 못한 장면을 생각하면서 깜짝 서프라이즈의 풍경을 기대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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