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어 '키 작은 사람'이란 뜻을 가진 어대(ООДОЙ) 오롬
몽골어 '키 작은 사람'이란 뜻을 가진 어대(ООДОЙ) 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2.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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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어대오롬

철기·토기·조선목재 생산의 전설이 전해지는 난장이오롬
한겨울에도 푸르게 빛나는 어대오롬 굼부리 속의 산전(山田).
한겨울에도 푸르게 빛나는 어대오롬 굼부리 속의 산전(山田).

제주도 시·읍면 중 오롬이 제일 많은 마을은 구좌읍 송당리로 25개이다. 그 중 덕천리는 7개의 오롬이 있다. 구좌읍은 중산간 마을이 가장 적어서 송당리 덕천리 2개밖에 없다. 그 중에 송당리는 두각을 나타내는 오롬들이 많다. 그와 달리 덕천리는 제주도 368개 오롬에 속하는 오롬은 7개지만 오롬이라고 부르기에 부끄러운 오롬새끼들이 많다.

덕천리는 옛날 거멀(검흘)로 불렸는데 ‘탐라순력도(1703년)’·‘탐라지도(1709년)’·‘제주3읍도총지도(18세기중반)’ 등에 이미 등재됐다. 일제강점기지도(1:50,000)와 ‘삼군호구가간총책(1904)’에도 86가구가 나타난다. 덕천은 설덕(곳자왈)의 덕, 샘천을 한자로 표기한 음이다.

덕천리는 상하덕천으로 나뉘며 일찍이 오롬새끼동(洞)이라 할 만큼 오롬들이 많았다. 송당과 경계를 이루는 체오롬과 거친오롬, 조천과 경계를 이루는 거문오롬과 주체오롬·북오롬·종재기오롬·웃식은이·알식은이·어대오롬과 368개 오롬 중에도 들지 않는 오롬들도 많다.

오롬탐사가인 김종철은 이 오롬을 일컬어 “광야를 달리는 날씬한 유선형의 전철과 같다” 할 만큼 상큼한 모양이다. 그러나 막상 오롬을 올라서 정상에 서면 일직선 유선형 전철의 모습은 사라지고 마치 활처럼 구부러진 등성이는 서북쪽으로 열린 굼부리를 품고 있다. 그 안에는 산전(山田)들이 자리 잡았는데 서북으로 불어오는 하뉘바람을 막아주니 포근해 보인다.

오롬 서북쪽은 선흘리로부터 포장된 길이 있고 동쪽 끝에는 동래정씨 선산들이 있는데 멀리 로는 바다가 보인다. 남쪽으로는 많은 오롬들이 있으나 나무들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나 오롬을 내려와서 보니 동북쪽으로 한동리 둔지오롬이 보인다. 그러나 돗오롬·ᄃᆞ랑쉬오롬 등은 보이지 않는다. 덕천과 선흘을 잇는 동백로에 이르자 유선형의 어대오롬이 환히 보인다.

‘어대오롬(御帶岳)’은 ‘어거하다·다스리다’는 뜻의 왕을 상징하고 ‘대(帶)’는 ‘띠, 또는 띠 모양의 지대를 일컫는다. 또한 어대악(漁岱岳)으로도 쓰였는데 이는 ‘고기어(漁)’와 ‘대산대(岱)자’이니 이는 ‘큰고기 모양’을 뜻하는 말로 표현되나 이는 모두 몽골어의 한자표기이다.

설덕 속을 헤엄치는 유선형 물고기 같아 보이는 어대오롬 전경.
설덕 속을 헤엄치는 유선형 물고기 같아 보이는 어대오롬 전경.

‘어대오롬은 아직까지 그 뜻을 모르고 있었다. 필자가 이 오롬의 뜻을 몽골사전에 찾아본 결과 ‘어대ООДОЙ’라는 말은 ‘난쟁이(одой хүн, тарваган хүн)를 낮잡아 이르는 말’로 ‘키가 매우 작은 사람’, 비유적으로는 보통의 높이나 키보다 아주 작은 사물을 가리킨다.

또한 다리가 짧은 닭(ОДОЙ ТАХИА)·인삼(ОРХООДОЙ)을 말하며 영어(warf, midget)로는 신화 속의 난쟁이(小人)로 ‘지하에 살며 금속과 관련된 일을 하는, 마력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나 모욕적으로 난쟁이, 또는 왜소증 환자를 일컫는다. 그러나 필자는 ‘난쟁이의 마력을 세 가지로 본다. 하나는 근처에 저류지를 파면서 그 옛날 토기 파편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덕천의 어대오롬과 선흘 바매기오롬 일대는 제주도에서 철기를 생산, 또는 제련하던 곳으로 알려졌다. ‘그 증거는 어디에서 찾을까?’ 필자는 고고학자·지질학자가 아니라 잘 모른다. 하지만 제주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이 증거를 찾고 싶다.

셋째로 필자가 전해들은 바로는 이 지역은 그 옛날 유명한 제주무역선인 ‘떡판배’를 건조하던 나무를 생산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말기 공권력이 약화되어졌을 때 많은 나무들이 도벌되어 제목으로 쓰였고 4.3사건을 보내며 좌익폭도를 죽인다고 불질러 사라진 것이다.

1960년대 군부독재는 식목을 강재 할 때 지금의 소나무·삼나무·몇 그루의 편백이 심겨졌다. 필자는 제주산 토종나무들을 찾았으나 목재로 쓰이던 가시나무 종류는 하나도 없었다. 고작 소나무·삼나무 속에 목재로 쓸 수 없는 참식·새덕이·생달·아외나무·구럼비나무 등의 상록수와 고령근(먹구슬)·머귀나무·담팔수와 아주 적게는 근처에서 상수리나무 등이 보였다.

서남쪽 입구에서 평평한 오롬등성이를 타고 걷노라면 우측 비탈에는 키 큰 나무들이 울창하고 왼쪽 굼부리 비탈에도 나무들이 가득하다. 동북쪽 등성이를 거의 내려올 쯤에 둥그스럼한 굼부리가 보인다. 한 겨울에도 푸른빛이 가득한 큰 밭이 자리 잡았고, 주위에는 큰 소나무들이 가득하다. 동북쪽 입구로 나올 쯤에는 동래 정씨 선산들이 자리 잡았다.

한경천씨가 덕천리장일 때 “오롬들을 정비하며 야자매트·표지판·안내판을 세웠으나 찾는 이가 적어 아쉽다”고 했다. 또한 필자의 고증을 받지 못하여 정확한 역사를 알리지 못한 것도 아쉽다고 했다. 꽉 찬 숲이 신선한데 큰 나무 아래 손가락만한 ‘자금우’가 잘 정비된 바닥에 ‘사랑의 열매’처럼 반짝거린다.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서 제주인의 마음처럼….

깊은 숲속 키큰 나무들 속에 잘 가꾼 것처럼 반짝이는 푸른 자금우와 빨간열매.
깊은 숲 속 키 큰 나무들 속에 잘 가꾼 것처럼 반짝이는 푸른 자금우와 빨간열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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