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평화가 밀려 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숲 길을 걷는다
‘자연의 평화가 밀려 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숲 길을 걷는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2.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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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수망리 마흐니 숲길(2)

크고 작은 나무들 어우러진 자연림 지나
규모 약 15m×10m 평균 1.2m 용암대지 만나
풍화·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단애 관찰
커다란 나무 밑 독특한 20m 수직굴 ‘눈길’
방치된 황한규 정부인 이씨 무덤 자리 씁쓸
용암대지.
용암대지.

■ 숲길을 걸으며

삼나무 숲길 500m가 끝나는 지점은 쇠물통이다. 실제 ‘쇠물통’은 거기서는 보이지 않는 냇가 암반에 고인 소에게 먹였던 물이다. 여기서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가면 용암대지와 수직동굴 등을 거쳐 오름 정상에 이르며, 오른쪽으로 가면 쉼팡과 용암수로를 거쳐 정상에 이른다. 왼쪽은 다양하고 거리도 짧은 1.7㎞지만, 오른쪽으로 가면 좀 지루한 2.7㎞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한 쪽으로 가서 다른 한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한다.

왼쪽으로 먼저 걷기로 하고 숲 길로 들어섰다.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이 길은 자연림으로 사람을 편하게 한다. 아름다운 꽃이 많다거나 좋은 나무가 쭉 늘어선 것도 아니지만 자연스런 길이어서 부담이 없다. 오랜 세월 한 자리에서 같이 풍파를 겪은 크고 작은 나무들이 즐겁게 어울려 자란다. 좋지 않은 향기를 풍긴다고 해서 눈 흘기지 않고, 눈에 거슬린다고 흔들어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미국 국립공원의 아버지이며 요세미티의 인자한 거인이라 일컬어지는 ‘존 뮤어’의 말 그대로다. ‘숲 속으로 햇살이 밀려올 때, 자연의 평화가 당신에게 밀려올 것이다. 숲의 바람은 당신에게 신선함과 생동감을 주며, 그 때 당신의 가진 걱정은 마치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듯이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름에 오르고 숲 길을 걷는 것이다.

지난달 용암대지에서 본 단풍.
지난달 용암대지에서 본 단풍.

■ 용암대지에 앉아

쇠물통 갈림길에서 500m를 걸으면 용암대지에 이른다. 출발점에서 약 4㎞를 걸은 셈이다. 그쯤 되면 한 번쯤 쉬어줄 만한 거리다. 정상까지는 1㎞ 남짓, 보통은 간식을 한다. 안성맞춤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이름이리라. 용암이 흘러와 평평하게 대지를 만들어 놓았다. 여름이면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바람을 불러들이고, 가을이면 단풍이 분위기를 자아낸다.

열 명이 앉아도 충분할 만한 자리에 앉아 저마다 정성을 풀어놓는다. 감자나 고구마를 굽거나 쪄온 분, 달걀 삶은 것도 무난하다. 계절에 맞춰 쑥버무리도 나오고 갓김치도 등장한다. 식게 떡이나 적도 심심치 않게 먹을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몫은 막걸리 두 병이다. 그 안주를 위해 새로 버무린 김치도 따라온다. 물론 멋모르고 따라 왔거나 바빠서 빈손으로 와도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나눠 먹어주는 게 부조니까….

이곳 마흐니 용암대지(熔巖臺地)는 ‘물장오리에서 유출된 물장올조면현무암이 수십 회에 걸쳐 흐르는 과정에서 용암유로를 따라와 편평하게 굳어진 것’이라고 안내판에 적었다. 용암대지의 규모는 약 15m×10m로 평균 1.2m 두께 현무암 5~6매가 시루떡처럼 굳어진 것이다. 용암류의 상부에서 물에 의한 풍화․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용암단애를 관찰할 수 있다.

수직굴 입구.
수직굴 입구.

■ 수직동굴을 내려다보며

충분히 휴식을 끝내고 다시 500m를 걸어가니 커다란 나무 밑에 큰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다. 목책이 둘러 있어 위험은 덜하지만 깊숙이 카메라를 들이밀어 촬영하려다가 빠질 수가 있기에 거기에 써놓은 안내판의 내용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용암동굴은 용암이 흐르는 사이에 겉은 식어 굳어지고 속은 그대로 빠져나가 생기는 동공(洞空)이다. 그러기에 약간의 경사는 있어도 대부분은 평평한데 수직굴은 안 그렇다.

마흐니 수직굴은 보통의 용암동굴이 수평으로 발달하는 것과 달리 수직으로 발달하며 수직굴 직하부에서 남쪽 수망리 민오름으로 수평굴이 형성되어 있어 ‘ㄴ’자 모양을 하고 있는 독특한 동굴이라고 했다. 동굴이 깊이는 약 20m나 되며 지표면에서의 직경은 약 2.7m이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커진다. 마흐니 수직굴을 이루고 있는 암석은 ‘휘석과 사장석 반정을 함유하고 있는 물장올조면현무암’이라고 써 놓았다.

정부인묘.
정부인묘.

■ 애틋한 사연의 정부인 묘

수직굴에서 300m 정도 거리에 ‘정부인 이씨 무덤’이 있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황폐한 무덤을 보며 탄식한 적이 있는데,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조금씩 상처가 아무는 모습을 보인다. 조상의 무덤을 보살피며 사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안쓰러워 보임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추측컨대 숲길을 내면서 표석을 확인하여 나무를 자르고 가시를 걷어낸 듯 보인다.

그래도 이토록 깊은 골짜기에까지 와서 무덤을 쓸 때는 후대의 발복을 기대했을 터. 표석의 내용을 감안하여 안내판 표제를 ‘제주 명월진(明月鎭) 만호(萬戶)를 지낸 황한규(黃漢圭)의 정부인 이씨(李氏)의 무덤’이라고 썼다. 표석을 보면 황한규는 1876년에 무과에 급제해 1881년 3월 28일부터 6월 24일까지 제주 명월진 만호를 지내고, 통정대부와 가선대부에 이른 분이다.

표석과 상석, 그리고 양쪽에 망주석 2개가 남았고, 산담도 반듯하다. 임오년 봄에 표석을 세웠다고 했으니, 2002년까지는 무덤을 돌보았는데 그 뒤로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비석 세운 분의 이름과 마을까지 나와 있는데, 아는 사람이 보면 씁쓸하겠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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