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누구든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2.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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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훈 시인

임인년(壬寅年)도 벌써 세밑이다. 누구나 이맘때면 자신이 지나온 한 해를 뒤돌아보게 된다. 잊혔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시간이다. 이 기억들은 어느 순간 암묵기억(暗默記憶) 혹은 데자뷔로 다가와 우리를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한다. 둘 다 기억에서 얻어낸 결과다.

“…사랑을 하려거든 연필로 쓰세요…”라는 전영록의 노랫말도 있다. 잊고 싶어도 잊지 못 하는 ‘떠나간 사랑의 안타까운 기억’을 지우개로라도 지워보고 싶다는 노래다.

어항 속에 갇혀 있는 금붕어의 형편은 또 어떨까. 어항에 갇혀 사는 금붕어가 아무런 불편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은 기억력이 없음에서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다람쥐가 도토리를 땅에 묻고도 이내 잊어버리는 사례도 이와 같다. 그의 건망증으로 땅에 묻힌 도토리는 이듬해 싹이 돋고 주변은 상수리나무 숲이 탄생한다. 여러 가지로 아이러니한 기억력들이다.

나는 이 아이러니를 이성낙 박사의 에세이에서도 찾았다. 베토벤의 마지막 작곡, 현악 사중주 제16번 ‘꼭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제목에서 따온 ‘갈 곳 없는 유골, 꼭 그래야 하나’라는 이름의 에세이다.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에 관한 글이다.

이분은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를 역임하셨으며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으로 재직 중이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1년이 넘었지만 고인의 유골은 아직도 안장할 자리를 못 찾아 연희동 자택에 있다는 내용이다. 전직 대통령의 유골 모실 자리를 마련하지 못 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부끄럽다는 노학자의 가슴 아픈 고백이다.

더불어 나의 마음도 우울해 짐을 숨길 수 없다. 총장께서는 생전에 ‘환자와 의사’라는 관계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몇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백담사에도 다녀왔던 기억들을 찾아 옮겼다. 

“…전(前) 대통령 내외분이 기거하는 요사(寮舍)를 보는 순간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협소하기 그지없고 온갖 물리적 요건이 너무도 참담했습니다. 유배지 그 자체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삶에서 ‘공(功)’과 ‘과(過)’가 공존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라고 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관련한 ‘과(過)’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거론됐지만 이 나라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공(功)’은 잊힌 부분이 너무 많아 아쉬운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라는 꼭지 글과 함께 “꼭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베토벤의 물음으로 에세이는 끝을 맺었다.

영욕의 세월이라는 말이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철되는 영광과 치욕의 과정을 아우르는 말이다. 세계의 역사는 물론 우리의 역사 또한 이 같은 과정 속에 성장·발전되어왔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 과정 속에는 뉘우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해함이 있었기에 변화와 개선, 그리고 발전이 가능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도 너를 정죄(定罪)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셨다. 누가 누구를 벌할 것인가. 우리 모두가 죄인 아닌 자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랑이며 용서며 화해다.

위정자든 아니든 자기감정에만 치우쳐 행동한다면 이는 짐승이나 다름없음이다. 폐위되어 귀향지에서 소천하신 연산군과 광해군도 제10대와 15대 조선의 왕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그 묘역 또한 돌아가신 유배지에서 도성 근처로 천장하여 폐비와 함께 안장되고 사적 제362호와 제363호로 지정해 보호 관리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민족만이 갖는 특별한 심성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과연 고 전두환 전 대통령 유골을 방치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하고 기록할까. 오늘의 역사 또한 우리가 만든다는 것임을….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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