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립·간척에 농경지·염전으로 하나된 소금섬
매립·간척에 농경지·염전으로 하나된 소금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2.2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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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 최초로 천일염전이 시작된 소금섬 비금도 (1)
우리나라 최초 천일염전으로 등록문화재 362호로 지정된 대동염전.
우리나라 최초 천일염전으로 등록문화재 362호로 지정된 대동염전.

# 중국 해역서 불어오는 풍파 막아주는 수문장

소금의 섬이라 불리는 비금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깨끗한 바다와 아름다운 기암절벽이 해안을 따라 펼쳐진 섬으로 마치 새가 날개를 펼친 형상을 하고 있다. 신안군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면서 중국 해역에서 불어오는 풍파를 막아주는 수문장 역할을 하는 섬이다. 제주도가 태풍의 길목에서 우리나라로 불어오는 태풍을 막아주 듯. 목포에서 58㎞ 떨어진 비금도는 면적 48.490㎢, 해안선 길이 48.9㎞로 동쪽으로는 암태도와 팔금도· 안좌도가, 서쪽으로는 흑산도, 남쪽엔 도초도가 있다.

도초도에서 서남문대교를 건너 비금도에 들어오자 맨 처음 눈에 띈 것이 수도리에 있는 최치원 우물 고운정이다. 가까운 곳에 우물이 있는 줄 알고 올랐으나 한참 올라도 우물이 보이지 않아 ‘괜히 올라왔구나’하고 돌아가려는데 좁은 오솔길이 있어 조금 따라갔더니 작은 우물에 고운정 표식이 있다. 설명을 보니 고운 최치원이 당나라로 가던 중 식수가 떨어져 비금도에 잠시 들렀더니 주민들이 가뭄으로 고통을 받고있는 것을 보고 ‘수도리 봉우리를 파면 물이 나올 것’이라 말해 그 곳을 팠더니 물이 솟아올라 이 샘 이름을 고운정이라 붙였다고 한다.

고운 최치원이 알려줘 우물을 팠다는 천년의 샘 고운정
고운 최치원이 알려줘 우물을 팠다는 천년의 샘 고운정

# 불문율 깨고 소금섬이라 부르게 된 비금도

비금도는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여러 개 섬이었으나 25차례에 걸친 간척사업으로 하나의 큰 섬이 됐다고 한다. 조선 중기까지는 이곳에 11개 포구가 있었는데 지동·당두·내촌·구기·외촌·수림·가산·도구마을들로 이후 퇴적과 간척이 거듭되면서 지금의 비금도가 형성된 것이다. 매립과 간척으로 만들어진 공간은 농경지와 염전이 됐다. 그래서 비금도를 소금 섬이라 부르고 있다.

1946년 이전에는 신안지역은 천일염 만들기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왔다. 이 불문율을 깨트리고 소금 섬이라 부르게 된 기록을 보면 이렇다. 일제 강점기에 먹고살기 위해 만주에 갔거나 평안도 염전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해방과 함께 고향 비금도로 돌아왔다. 손봉훈과 박삼만씨다. 손씨는 만주에서 평양을 거쳐 천일제염시설을 보고 왔다. 당시 제염 인력으로 비금도 섬 주민들이 평안도까지 가서 생활했기 때문에 시설을 돌아보기 가능했고, 박삼만 씨는 평안남도 용강군 귀성 염전 기술자였다. 전통 방식인 화염(火鹽)을 해오던 주민들은 손봉훈, 박삼만씨와 함께 비금도 수림리 앞바다 일부를 간척해 천일염전을 만들었다. 지게로 돌과 흙을 모아 제방을 쌓아 만든 것이 ‘시조 염전’이라 불린다. 그 해 6월 준공한 천일 염전지에서 ‘하얀 소금’이 아닌 ‘하얀 금(金)’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때 개척한 구리염전이 마침내 비금도를 소금의 섬을 일으키는 기적을 창출했고, 이런 소금제조법은 다른 섬으로 전해졌다.

이전에는 신안군 일대는 천일염 기술이 발달되지 않아 전통 생산방법인 자염(煮鹽)을 생산했다. 자염은 바닷물을 가마솥에 넣고 장작불로 끊여 증발시킨 후 추출하는 소금으로 몇 날 며칠 동안 장작불을 지펴야 하니 연료비와 인건비가 많이 들었으나 천일염은 연료비가 전혀 들지 않아 당시로선 획기적인 기술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소금 한 가마에 800원까지 뛰었고, 보리쌀 한 가마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금값이었다. 이 때 염전 근로자들 수입이 얼마나 많았으면 ‘호주머니 실밥이 터질 정도’였다고 한다.

천일염 생산방법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장됐으나 1990년 후반 소금시장 개방으로 중국산 값싼 소금이 엄청난 물량 공세로 염전들이 하나 둘 폐전(廢田)되며 호주머니가 터질 정도 호황을 누렸던 때는 이제 옛말이 됐다고 한숨이다. 폐전된 밭은 쌀농사도 지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시금치 재배로 상당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비금도 시금치는 게르마늄토양에서 해풍을 맞고 자라 비타민 성분이 많은 섬초라 해 고가의 대접을 받고 서울 등지로 팔리고 있는데 전국유통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매년 하누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위해 쌓아논 내월우실 돌담
매년 하누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위해 쌓아논 내월우실 돌담

# 1375년에 세워졌다는 사찰 서산사 

가볼 곳이 많다는 비금도를 조금이라도 더 돌아보기 위해 서둘러 서산사를 찾았다. 고려 후기 우왕1년(1375)에 세워졌다는 이 사찰은 다른 곳에 있었으나 1920년 현재 산 중턱으로 옮긴 아담한 고찰이다. 절에서 나와 언덕을 넘으니 내월 우실이라는 석성처럼 쌓은 돌담 울타리가 있다. 매년 하누넘에서 불어오는 재냉기(재 너머에서 부는 바람)바람으로 농사를 망치곤 했다. 그래서 이곳에 돌로 담을 쌓아 바람을 막아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고 마을의 재앙을 막기 위해 길이 3㎞, 높이 3m, 폭 1.5m의 마을 울타리를 선왕산 중턱에서 지게로 돌을 져다가 쌓았다는 설명문이다. 이 돌담은 근대 문화유산 제283호로 지정됐다. 섬마다 바람 피해를 막기 위해 돌담 울타리나 밭담을 쌓고 있어 이런 생활 유산들이 관광객들에게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고 있는 것 같다.

겨울철은 낮 길이가 짧아서 그런지 몇 군데를 안 다녔는데 벌써 해가 저물어 간다. 내일 새벽에 섬 중앙에 있는 그림산을 오르면 비금도 전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면사무소에 들려 그림 산 오르는 코스와 꼭 가볼 만한 비금도 코스를 알아보고 일찍 숙소로 들어왔다.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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