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 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의 유산
한국 추상 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의 유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2.22 1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우석·1989)

부인 김향안 여사, 일기·편지들 모아 출판
후세의 연구 도움 위해 책으로 엮어내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1989)에 수록된 김환기 화백.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1989)에 수록된 김환기 화백.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1989) 표지.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1989) 표지.

옛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일단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놈들을 보면 눈길이 간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손길이 가고, 때마침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면 고이고이 모시고 온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수십 년 세월의 더께가 쌓이다보니, 우리 책방 2층 전시장은 전문분야인 헌책 외에도 늘 오만 잡동사니(?)들로 어수선하다.

다른 이들이 언뜻 보기에는 정신없어 보이겠지만, 내게는 그 하나하나가 나름 만나게 된 사연이 있는 놈들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그 사연에 대한 ‘썰’을 풀다보면 아무 생각 없이 전시장에 들어온 분들이 시간을 날리시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떤 분들은 책방지기가 수다쟁이임을 눈치 채고 일찌감치 탈출에 성공하시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마음이 약하신 분들은 나의 마수에 걸려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물론 개중에는 그 시간을 즐기시는 분들도 다소 계시다는 핑계로 염치불구하고 ‘수다(?)’ 타임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명색이 헌책방이니 그 수다의 주제는 아무래도 책과 연관되는 사연이 많게 마련이다. 책방에 전시된 그림이나 작품이 수록된 책이라든가 어떤 책의 저자가 만든 작품이라든가 하는 내용이다 보니, 비록 소품이라도 원화(原畫)거나 하다못해 판화라도 우리 책방에 소장하고 작품들이 주 대상이다. 주머니 사정이 그리 넉넉지 못한 관계로 거금(?)이 필요한 작가의 작품은 별로 없기에, 그간 소개하고 싶었지만 소장품이라고 해 봐야 ‘아트상품’ 수준의 작품 밖에 없는 작가 관련 서적에 관해 수다를 떨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오늘은 그런 책 가운데 한 권을 소개해 보련다.

그 책은 바로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우석, 1989)이다. ‘金煥基(김환기) 傳記(전기)중의 一部(일부)’라는 부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바로 우리나라 추상 미술의 선구자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 화백이 남긴 일기와 편지들을 모아 그의 부인 김향안(金鄕岸, 1916~2004) 여사가 정리 출판한 책이다.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1989)에 수록된 김환기 화백 작품.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1989)에 수록된 김환기 화백 작품.

수화는 1950~60년대에 ‘전통적인 한국의 미에 서구 모더니즘을 결합’하고, 1960년대 후반부터 ‘점·선·면 등 순수한 조형적 요소로 보다 보편적이고 내밀한 서정의 세계를 심화시켜 명상적인 시(詩)적 공간으로 승화’시킨 ‘전면점화(全面點畵)’로 작품 세계의 절정을 이루었다고 평가 받는 20세기 한국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부도덕한 미술상에게 사기를 당하고도 오히려 덤덤한 태도로 ‘작품은 언제고 세상에 다시 나온다는 신념으로 잊어버리고 살자’던 화백에게 교수나 공무원으로 활동했던 ‘서울 시대’란 ‘작가로서는 가장 불우했던 시기’였다지만, 만리타향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즈음의 일기에서는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江山(강산)…’이라며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하고 있다.

우리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에 반해 ‘눈에 뜨이는 대로 다’ 샀던 화백에게 ‘산다는 것은 소유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발견이었을 뿐’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는 지은이는 후기에서 ‘슬픈 기록이기 때문에’ ‘다시 읽을 용기가 없’지만, ‘후세의 사람들이 김환기를 연구할 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책으로 엮는다고 했다.

수화의 예술 세계를 널리 알리고자 했던 지은이의 결정체는 단연 ‘환기미술관’…다음 상경길이 기다려진다.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1989)에 수록된 김환기 화백 작품.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1989)에 수록된 김환기 화백 작품.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1989) 내용(부분).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1989) 내용(부분).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