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간 초원에 누워 있는 여체와 같은 ᄀᆞᆯ론오롬
중산간 초원에 누워 있는 여체와 같은 ᄀᆞᆯ론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2.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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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ᄀᆞᆯ론오롬

좌봉은 북향·우봉은 서향으로 열려 있는 말굽형굼부리
골론족은오롬 정상에서 본 앞바다 쪽으로 굴오롬, 바굼쥐오롬. 절워리가 보인다.
골론족은오롬 정상에서 본 앞바다 쪽으로 굴오롬, 바굼쥐오롬. 절워리가 보인다.

필자는 중국에서 20여 년 이상 살며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는 내몽골의 여러 지경을 조사했다. 또한 외몽골(몽골국)에서 3달간 지내며 외몽골 지경을 조사했다. 흔히 알기는 고비사막을 경계로 중국의 몽골족자치주인 내몽골자치구(성)와 외몽골(독립공화국)로 나뉘나 실상은 구소련의 몽골자치공화국인 부리야트(Буряад)까지 3개의 몽골로 나뉜다.    

ᄀᆞᆯ론오롬은 이제까지 대병악(大竝岳)·소병악(小竝岳)으로 불려왔다. 여기서 병자는 ‘아우를 병(竝)’, 또는 ‘어우를 병(幷)’자로 쓰는데 이는 ‘아우르다, 어우르다, 함께하다’라는 의미이다. 제주어로 ᄀᆞᆯ론오롬의 ‘ᄀᆞᆯ론(골른)’이란 말은 ‘좌우가 고르다’라는 말이나 아직까지 그 어디도 ‘ᄀᆞᆯ론오롬’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지 않았으니 그 의미 역시 관심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 오롬들이 처음으로 조사 기록된 것은 19세기 중반 제주목사로 부임해 온 이원조에 의해서 쓰여진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 ‘산천(山川)’ 조에 표기된 것이다. 당시 제주도 오롬을 82개 등재했는데 제주목 43개, 정의현 24개, 대정현 15개이다. 이 중 ᄀᆞᆯ론오롬은 竝岳(병악)이라고 표기했다. 이는 두 개의 오롬이 ‘나란히 서 있다’는 뜻으로 제주에서는 ‘ᄀᆞᆯ론오롬’이라 불려왔으나 竝岳(병악)으로 표기한 이후 지도에까지 竝岳(병악)으로 표기됐다.
 
제주어에서 ‘ᄀᆞᆯ론’이란 ‘골르다’(한국어 ‘고르다’와 다름)의 명사형이다. 좌우 어느 것이 크고 작음이 없이 ‘평등하다, 동일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한국어의 ‘평평하게 만들다’는 의미의 ‘고르다’와는 다른 뜻이다. 제주어 ‘ᄀᆞᆯ론’은 사람이 땅을 평평하게 만드는 과정의 ‘고르다’와 달리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형태로 좌우가 동등하다는 의미로 서로를 비교할 때 쓰이는 말이다.

눈보라 속의 골론족은오롬에서 본 골론큰오롬.
눈보라 속의 골론족은오롬에서 본 골론큰오롬.

ᄀᆞᆯ론오롬의 두 봉우리 중에 좌봉은 132m, 우봉은 93m로 좌봉이 우봉보다 40여m 높으나  남쪽에서 보면 두 봉우리 모양이 비슷하다. 또한 두 오롬의 둘레는 좌봉이 2313m, 우봉이 1848m로 다르고 면적도 30만1657m, 17만8836m로 고르지 않다. 그 모양도 앞에서는 종형으로 닮은데 뒤로는 둘 다 말굽형으로 좌봉은 북향, 우봉은 서향으로 열려 있는 말굽형굼부리다. 

기생화산으로 생성된 제주 한라산이나 제주 오롬들의 경우는 겉모양으로는 만주나 몽골, 연해주 지경의 오롬들과 많이 닮았다. 이 지역 오롬들은 지질학적으로 기생화산의 구조를 띄고 있는 제주 오롬들과 다르지만 겉모양은 유사하다. 특히 몽골지경을 탐사하다 보면 누운 듯 앉은 듯 솟아오른 모양들이 제주도에 솟아오른 오롬들을 보는 듯하다.

초원은 평평하고/ 땅은 크고 넓어라// 푸르디 푸르고 푸른 하늘/ 하늘은 푸르고 또 푸르다// 아, 내 사랑 시린호트/ 멀고 먼 산과 산이/ 당신의 유방을 닮았다 했더니/ 여기 누웠구료/ 내가 찾던 님// 내 찬양 하리니/ 산아, 너 일어나 춤을 추워라/ 아, 내 사랑 시린호트 

오래 전에 베이징에서 만리장성 팔달령을 지나 장자커우(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를 지나 내몽골 시린호트에서 한 1주일을 체류하고 내몽고 퉁랴오를 거쳐서 랴오닝성 센양까지 2주일간 탐방한 적이 있다. 눈 내리는 팔달령을 지나서 눈 쌓인 장자커우를 지나 시린호트에서 머무는 동안 눈 그친 푸른 하늘과 눈보라 그친 초원에 오롬들이 제주도를 보는 듯했다.

한라산이나 제주 오롬들의 모양을 볼 때 특이하게도 여성적이다. 그래서 제주를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 전설도 그렇거니와 제주 오롬들 역시 여성의 몸매를 닮았다. 솟은 봉우리나 말굽형으로 열린 굼부리 등이 강한 음기를 띄고 있다. 이를 누르기 위해 남근상(男根像)을 세웠다는데, 실제로 돌하르방은 남근상인데 남사스러워 이목구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ᄀᆞᆯ론오롬 서쪽의 큰오롬(대병악大竝岳)과 동쪽의 족은오롬(소병악小竝岳)은 신기하게도 맞대어 있는데 두 오롬을 동시에 보면 마치 ‘중산간 초원에 누워 있는 비바리의 젖가슴’ 같다. 또한 ᄀᆞᆯ론오롬의 큰오롬에 올라서 동쪽의 족은오롬 골짝을 보아도 여체의 모습을 닮았다. 제주의 다른 오롬들을 보아도 그렇지만 골른오롬 두 오롬의 모양을 보면 더욱 그렇다.

ᄀᆞᆯ론오롬 큰오롬을 내려와 왼쪽으로 조금 더 가면 동쪽 족은오롬으로 나가는 탐방로가 보인다. 솔밭 숲길을 따라 얼마큼 올라가면 오른 쪽으로 굼부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언덕진 굼부리를 올라오는 잔디밭 오솔길은 때마침 눈이 내려 희끗희끗 하지만 왼쪽으로는 푸른 나무들과  푸른 채소밭들과 달리 굼부리에는 이미 옷을 벗고 겨울 속으로 들어간 낙엽수들이 가득하다. 

골론족은오롬 오솔길을 따라서 정상으로 오르는 탐방객들.
골론족은오롬 오솔길을 따라서 정상으로 오르는 탐방객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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