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능력과 겐세이
공감능력과 겐세이
  • 김현종 기자
  • 승인 2022.12.21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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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49재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참사가 난 지 50일도 넘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아프다.

희생자의 상당수가 미처 꽃 피우지 못한 청춘인 만큼 자식을 가슴에 묻는 참척(慘慽)의 고통을 겪는 부모들이 많아 더욱 가슴이 아리다. 국민적인 트라우마가 지속되고 있다.

국민들을 더욱 슬프게 하는 건 막말과 망언이다.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할 정치인들의 입에서 사과와 위로는커녕 연일 도를 넘는 말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일부 단체와 유튜버들은 희생자와 유가족을 욕보이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만 해도 이태원 참사 생존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을 놓고 본인이 좀 더 굳건하고 치료 생각이 강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곁에서 친구 둘을 잃고 얼마나 고통에 짓눌렸으면 스스로 삶을 마감했는지 진정 헤아리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책임 회피용일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학생을 무너뜨린 건 악성댓글을 비롯한 2차 가해였다.

김미나 국민의힘 창원시의원은 유족들을 향해 자식 팔아 장사한다고 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두고 나라구하다_죽었냐”, “시체 팔이 족속들” 등등 막말을 쏟아냈다. 논란이 커지자 시의회에서 사과한 김 의원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공인인 것을 깜빡했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놔 다시 한 번 국민적인 공분을 샀다.

이른 바 윤핵관으로 꼽히는 국민의힘 권성동장제원 의원도 유가족을 공격했다.

권 의원은 페이스북에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출범 사실을 알리며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썼다. 장 의원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두고 애초 합의해줘선 안 될 사안이고 말했다. 유족들의 아물지 않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 꼴이다.

극언(極言)과 망발로 인한 또 다른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원인은 공감능력 결핍이다.

문득 이은재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현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이 떠오른다.

2016년 서울시교육청 상대 국정감사에서 이 전 의원은 조희연 교육감에게 교육청이 MS오피스를 왜 MS와 독점 계약했나”, “교육감 자질이 부족하다고 호통을 치더니 끝내 사퇴하십시오~”란 웃지 못 할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 당시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듯 멘붕에 빠진 조 교육감의 표정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2018년엔 겐세이(견제), 야지(야유) 등 일본이 비속어 사용으로 또 한 번 유명세를 타더니 2020년에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호위무사가 되겠다며 대검찰청 앞에서 혈서를 쓴다고 손가락을 깨무는 듯하더니 나직하게 아까징끼라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알다시피 아까징끼는 빨간 소독약을 일컫는 일본어다.

한 총리부터 이 전 의원까지 문제의 발언자들은 공감 DNA가 결핍된 일종의 환자 같다.

이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곧 우리 사회를 향한 겐세이야지(일본어 속어를 쓰긴 저어하지만 문맥에 딱 어울린다는 판단)가 아닌가. 국민적 공감대 속에 제23의 참사를 막고 국가안전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에 재를 뿌리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공감이 어려울까. 공감능력 제로인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 지도층 자리에 앉아 있을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태원 참사가 우리 사회에 묻고 있다.

삼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건넨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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